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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Jul 15. 2024

밤의 의식

내게 머문 마음

  나의 민낯과 마주한다. 어떤 것으로도 포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얼굴. 양 볼에 내려앉은 기미를 바라본다. 더 진해졌는지 더 연해졌는지 나만 아는 짙기. 미세하게 자리한 윗입술 주변의 주름도 본다. 운동을 하며 호흡을 하느라 입을 자주 오므렸더니 그 부분에 주름이 생긴 것 같다. 남들 눈에는 띄지 않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작은 변화가 커다란 우울을 몰고 온다. 조금 반갑고도 슬픈 소식은 눈두덩이의 지방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것. 툭툭하던 눈두덩이가 쏙 들어간 것 같고 한결 눈이 커져 보인다. 나이가 들면 눈두덩이도 꺼진다더니 정말 맞는 말인가 보다. 눈두덩이를 채우던 지방마저도 그 탄력을 잃었나보다. 늦은 밤, 거울 앞에서 거울 속 나와 오랫동안 침묵의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성형수술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은 아니다. 한때는 수술이 무서웠고 또 한때는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었다. 수술을 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으리란 확신도 없었고, 오히려 부작용이 대출 이자처럼 나를 옥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나는 어느새 인정하기 싫지만 오십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요즘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이십 대 때는 한 번도 나의 외모에 만족했던 적이 없다. 늘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다. 외모로 돈을 버는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나의 능력을 갈고 닦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현실로 이어져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법을 배우기보다 자격증을 따고 학원 수강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썩 반갑지 않게 되기 시작하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기미가 내려앉은 피부를 위해 난생 처음 피부과도 가보고 다이어트라는 것도 해봤다. 좋은 화장품이라 일컬어지는 것들도 발라보고 나의 체형을 잘 커버해 줄 옷도 구입해 본다. 신경을 쓰지 않을 때보다 마음을 그곳에 두기 시작하자 변화도 내 것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밤마다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밤에만 바른다는 나이트 크림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낮에도, 밤에도 아무 때나 발라도 되는 크림이 아니라 나이트용 크림이 따로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밤에 그 크림을 바르고 일어나면 왠지 피부가 더 촉촉해진 듯 보였다.     

  기미 패치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뾰족한 가시가 난 것 같은 패치는 아주 작은 사이즈임에도 가격이 상당했다. 하지만 내 양 볼의 기미를 없앨 수만 있다면 그깟 돈은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자기 전에 패치를 붙이고 옅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패치를 떼며 조금이라도 옅어졌는지 한참을 거울과 씨름한다.      


  그러다 약점보다 강점을 살리자는데 마음이 실렸다. 나는 눈은 작지만 속눈썹은 긴 편이다. 그래서 마스카라를 즐겨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스카라를 하다 보니 아래 속눈썹은 거의 숱이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속눈썹 영양제였다. 그 길로 밤에 잘 때 속눈썹 영양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진짠지 느낌인지 몰라도 몇 달 사용하고 나자 아래 속눈썹이 길어진 것 같았다.      


  칠십 대인 엄마도 나의 변화를 보더니 속눈썹 영양제를 사달라고 하셨다. 기꺼이 영양제를 사드리자 엄마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눈 아래가 쳐져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눈 밑 지방 재배치 같은 수술이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수술은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칼로 째고 깁고 수술대에 눕는 것이 영 탐탁지 않다고 하셨다. 눈 밑 지방 재배치에 관한 검색을 해서인지 나의 sns에는 신박한 아이템이 떠 있었다. 바르기만 하면 주름 없이 눈 밑이 펴지는 마법같은 크림! 내 손은 이미 주문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 크림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엄마는 한 통을 꼬박 다 쓰고 꽤 만족하셨다. 다시 한 통을 더 시켜달라 하셨고 엄마의 변화를 보자 나도 변화하고 싶었다. 엄마와 나는 밤마다 그 크림을 쌀알만큼 눈 밑에 발랐다. 서로 사는 곳이 다르니 발랐는지 안 발랐는지 정확히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만나기만 하면 그 크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 밑을 살피며 긍정적인 변화에 기뻐하곤 했다.     


  아침이 밝아오면 어김없이 거울 앞에 선다. 내가 밤 동안 했던 일들이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라도 내게는 큰 기쁨이 되어준다. 속눈썹은 길고 짙어졌는지, 나의 눈 밑은 더 팽팽해졌는지, 나의 기미는 옅어지고 있는지. 자는 사이 내게 일어난 변화들을 확인하는 일은 내 아침의 또 다른 루틴이 되었다.     


  인간은 세월을 껴안으며 어쩔 수 없이 늙어간다. 어느 때는 친구들이 보이는 노화현상과 동일한 노화현상을 보이면 안심이 되기까지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내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나이 들고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기 때문이다. 40대인데 20대처럼 보이고 싶진 않다. ‘늙음’보다 ‘젊음’이 좋다고는 하지만 내 안에 쌓인 세월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싶진 않다. 그저 내 나이답게 늙어가지만 곱고 멋지게 늙고 싶다.      


  주름은 자주 찡그려 생긴 게 아니라 많이 웃어서 만들어졌기를 바란다. 초콜릿 복근은 아니더라도 곧은 자세를 유지시켜 줄 코어를 갖고 싶다. 지금은 염색을 하고 있지만 은퇴 후에는 염색을 하지 않고 자연스런 흰 머리를 유지해 볼까도 생각중이다. 흰색으로 멋지게 염색한 것처럼 그 자연스러움이 멋스럽길 바란다.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아름다운 나이듦이길 바란다. 내가 한 다양한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들은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의 다른 이름이 되었기를 바란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학습의 즐거움을 기꺼이 느끼며 언제나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터치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30대가 되었을 때는 20대보다 30대가 좋았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열심히만 하던 20대보다 원하던 지점에 도달해 있는 30대가 좋았다. 40대가 되었을 때는 30대보다 40대가 좋았다. 육아에 치여 내가 옅어졌고 무언가에 도전하고 집중하기에는 늘 시간이 없었던 30대보다 내가 가진 능력들을 더 많이 펼칠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50대가 되면 40대 보다 더 좋았으면 좋겠다. 어떤 형태로든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50대가 된 나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어제보다 하루치 더 쌓인 세월이 내려앉은 곳을 살펴본다. 그 세월의 무게만큼 나를 안쓰러워하거나 지나간 시간들을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한다. 대신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세월의 탑을 고요히 바라본다. 너무 앞서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않고 제 속도대로 탑이 쌓아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그 탑을 잘 쌓아온 나를 바라본다. 오늘 밤에는 거울 속 나를 조용히 껴안아 본다. 그간 쌓아 올린 수많은 세월과의 또 다른 포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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