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흔적

삶을 짓다

내게 머문 마음

by 신혜정

구수한 향이 창문을 넘어온다. 연이어 도마와 만난 칼이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린다. 창문 너머 보이는 어슴푸레한 실루엣은 그 부엌의 주인인가 보다. 구수한 밥 냄새를 뒤따라 된장찌개 냄새도 난다. 부엌의 주인은 된장찌개에 넣을 각종 채소를 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두워지는 골목을 지나다 마주친 밥 짓는 냄새에 마음에 온기가 돈다.

돌연 부엌을 지켜주던 젊은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갓 지은 밥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어린 나도 거기 있다. 따스한 기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12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퇴근하는 길, 밥 지을 이를 온종일 기다렸을 내 부엌이 생각나 걸음이 빨라진다.

우리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삼식이다. 엄마는 자신도 80이 다 되어가면서 80이 목전인 아버지의 삼시 세끼를 꼭꼭 다 챙기신다. 요즘은 햇반을 사 두고 먹는 집도 많다던데 꼭 밥솥으로 쌀을 안쳐 밥을 짓는다. 배달 어플로 배달 음식을 시켜드리려고 해도 마다하시고 늘 손수 밥을 지으신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입맛을 만족시켜 줄 각종 밑반찬들이 서로 먹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왜 이렇게 빨리 차는지 의문인 나와 달리 엄마의 부엌에서는 누구 하나 버려지지 않고 음식들을 홀대하는 일이 없다.

반면 워킹맘이라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사는 나는 반찬가게나 배달 음식과 친하게 지낸다. 손수 반찬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는 것에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배달 음식도 종종 시킨다. 내가 아픈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다 만들어진 음식을 시켜 아이들 앞에 대령한다. 대부분의 배달 음식은 짜고, 맵고, 달다. 자극적인 맛들은 아이들의 건강에 안 좋겠지만 내 건강도 중요하다며 어설픈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짓다’는 말에는 정성이라는 양념이 듬뿍 들어있는 것 같다. ‘밥을 하다’와 ‘밥을 짓다’는 정성의 무게가 다른 느낌이다. 밥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진정 밥을 짓고 싶다. 끼니때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입에 밀어 넣을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먹는 즐거움을 위하여 밥을 지으며 그 과정에 나의 마음을 뜸들이는 시간을 갖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밥을 짓지 않고 밥을 하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나의 꿈은 내 식사 혹은 내 가족의 식사를 위해 충분한 시간과 진한 정성을 들여 밥을 짓는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이런 시간이 허락되기를 바라며 꼬깃꼬깃 접어 서랍에 넣어 둔 친구의 쪽지처럼 내 마음에 넣어 둔다.

그런데 이 ‘짓다’라는 말은 집을 건축할 때도 사용된다. 나의 또 다른 꿈 중 하나는 집을 짓는 것이다. 관리하기 어렵지 않은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을 짓겠다는 꿈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방과 화장실은 몇 개로 할지, 집의 외장재는 무엇으로 쓸지, 포치를 넣을지 말지 등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미래의 집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유튜브를 보며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한때는 공책에 스크랩을 하기도 했다. 집 하나를 완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마음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늘 나를 설레게 하는 또 하나의 꿈은 좋은 글을 짓는 것이다. 내 책상 위에서만 살고 있는 나의 글들을 사람들의 곁으로 내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그 글들이 부끄럽지 않고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할 텐데 언제쯤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의 글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면 좋겠다. 내 마음에 뿌려진 글쓰기의 싹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흩어진 씨앗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새로운 피어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쯤 되면 삶도 살아내는 게 아니라 지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 게 아니라 정성과 시간을 들여 내 삶의 모든 과정들을 지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정성 들여 밥을 짓고 내가 지은 밥을 먹고 자라난 아이들은 다시 자신과 그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줄 것이다. 많은 생각과 가치가 살아 숨쉬는 집을 짓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란 믿음을 갖고 있다.

정성이 녹아든 집에서 온기가 더해진 밥을 지으며 일상의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글감들을 충실히 글로 지어내는 삶. 내가 그동안 바라고 원하던 삶은 이런 모습이었나보다. 어떻게 하루가 가는지 모르고 그저 매 순간 해야 할 일에 밑줄 긋기에 바빴고 그것이 성실한 삶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정성을 들이기보다 해치우는 데 주력하고 그것만으로도 버거운 인생이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짓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자 내 발자취가 다시금 돌아봐졌다.

독 안에 든 쌀을 떠 와 맑은 물에 쌀을 씻는다. 쌀뜨물은 알뜰히 모아 식물의 목을 축여주는 데 사용한다. 잘 씻은 쌀을 밥솥에 안치고 밥을 짓는다. 밥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며 구수한 냄새가 난다. 어느새 다 되어버린 밥솥 뚜껑을 열고 밥을 섞는다. 주걱으로 이리저리 밥을 저으며 쌀알 사이사이에 밴 내 마음과 만난다. 그것을 정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까? 오늘 저녁은 흰 쌀밥과 잘 어울리는 된장찌개다. 여러 가지 채소들을 손질하며 온전히 그것에 집중한 나를 발견한다. 김이 나는 밥과 된장찌개, 몇몇의 간단한 반찬을 놓고 우리 가족이 둘러앉는다. 자신만의 정성으로 열심히 지은 저마다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꽃이 핀다. 오늘도 잘 지은 하루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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