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머문 마음
햇살이 가득한 베란다로 들어선다. 나란히 서 있는 식물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다. 생기를 잃고 고개 숙인 것은 없는지, 갈증이 난다고 외치지는 않는지 눈과 귀를 활짝 연다. 자신의 생을 다하고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을 마지막 장면이 상상되어 마른 잎을 줍는 손이 잠시 멈칫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라진 것이 있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있다. 수줍게 솟아난 여린 잎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다 휘어진 그것을 발견한다. 분명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는데 나에게 굽은 등을 보여준다. 그의 줄기는 언제 저렇게 굽어졌을까? 휘어진 율마의 줄기를 바라보다 무심했던 내 마음이 미안해 베란다를 돌아 나와버린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건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마당있는 주택에 살다 결혼을 하며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늘 곁에 있어 고마움을 잊곤 하는 가족처럼 꽃나무가 지천인 마당이 늘 곁에 있어서인지 식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이 남편이 되면서 베란다 정원이 만들어졌다. 집들이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기쁜 마음을 화분에 담아 우리 집으로 왔다. 베란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화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처음엔 대부분 물을 주지 않아 화분이 죽었다. 나는 계속 식물에 관심이 없었고 남편이 바빠져서 물을 주지 않으면 그들은 소리 없이 죽어 나갔다. 초록잎은 노랗게 낯빛을 바꾸었고 목이 말랐던 나무들은 나를 원망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나의 귀에는 그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식물에게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고 가끔은 그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곤 했다.
시간이 지나서 남편의 식물 사랑이 나에게로 옮아온 뒤에는 과습으로 식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무지했던 나는 눈이 마주치면 그들에게 물을 권했다. 날짜를 세거나 겉흙을 만져보는 자상함이 내겐 없었다. 물이 화분 아래로 새어 나올 때까지 듬뿍 주는 것이 나의 사랑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에게 시간과 정성을 주고 있으니 너는 나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속삭이곤 했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수많은 화분들이 소리없이 죽어간 뒤였다. 수십 개가 넘던 화분은 열 몇 개로 줄어들었다. 그사이 그들이 원하는 사랑법을 알게 되어 겨울이면 실내로 식물을 들이기도 하고 해가 있는 방향으로 화분을 돌릴 줄도 알게 되었다. 습도뿐만 아니라 온도도 중요하며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식물들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셈이다.
베란다 정원에 있는 식물 중 성장이 제일 더디다고 생각한 것이 율마였다. 아주 작은 율마를 화분에 심어 데려왔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키가 자라지 않았다. 영양제도 줘보고 자리도 옮겨보았다. 하지만 도통 자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율마의 시간만 달리 흐르는 것인지 속절없이 흐르는 나의 시간과 바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2년 정도가 지나자 갑자기 급속도로 커나가기 시작했다. 키가 커지고 몸통도 자라서 분갈이를 해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오랜 시간 동안 자라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더니 그 도약이 눈부셨다. 고맙고 기쁜 마음에 지나치게 안도했는지 다시 내가 눈을 맞추었을 때 율마의 줄기는 한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기품있다 생각했는데 내가 소홀한 사이 한쪽으로 등이 구부러져 버렸다.
한동안 굽은 가지가 무척 눈에 거슬렸다. 나름대로 관심있게 봐 온 것 같은데 언제 저렇게 되어 버렸는지 안타까웠다. 그러다 율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햇살 쪽으로 더 가까이 가고싶은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치있다 여기는 곳으로 몸을 굽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앞세우자 안타까운 마음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미처 살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따라나왔다.
나의 등은 어디로 굽어 있을까? 나의 해는 어디에서 비칠까? 여러 길을 돌아서 도착한 나의 직장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 시간들을 넘어 마침내 도착한 곳이기에 애착도 남달랐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정의 순간마다 항상 가정을, 가족의 품을 택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때 내 마음을 붙잡는 건 항상 가족이었다. 어린 딸들이 늦은 시간까지 엄마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그 언젠가 우리 엄마가 내 곁을 지켜주어 지금의 내가 풍요로울 수 있는 것처럼 딸들의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때로 가족이 내 앞을 막는 장벽처럼 느껴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장벽보다 내 등을 토닥여 주고 안아주던 때가 더 많았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직장에서의 힘든 순간에도 가족은 위로와 평화의 섬이 되어 주었다. 험난한 파도에 휩쓸려 상처나고 아파도 가족이라는 섬에 안겨 있을 때면 상처에 새 살이 돋고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울다가도 내 품에서 울음을 그쳤고 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돋아나는 말은 엄마였다. 나처럼 딸들도 가족의 섬에 안기면 평화롭게 잠들었다. 우리는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 기꺼이 서로의 섬이 되어 주었고 그 섬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나의 굽은 등은 가족을 향해있다. 나만의 태양이 있는 그곳. 화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결국 나는 가족에게로 몸을 돌린다. 따사로움을 향해 등을 굽히고 그 온기를 먹고 자란다. 때로 온기가 식기도 하고 해가 구름에 가려 흐린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는 항상 거기에 있고 늘 그래왔듯 그곳으로 등을 굽힌다. 그들이 나에게 비추는 햇살이 나를 살게 한다. 비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작은 잔가지들이 부러지는 날에도 해가 계속해서 나를 비출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초록빛은 저물지 않는다.
율마의 굽은 등을 오래 바라본다. 더 이상 그것이 안타깝지 않다. 지난한 사랑의 흔적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