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달려 온 한 주의 끝, 드디어 금요일이다. 도드라지는 들뜬 마음이 금요일의 존재감을 알린다. 출근과 동시에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상사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함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을 살펴봐도 도무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모이라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심장이 서너 배로 빨리 뛴다. 상사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쪼그라든 상태다. 무슨 일인지 알고 나면 마음이란 것이 남아있기나 할지 걱정부터 된다. 상사의 방까지 걸어가는 길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상사는 민원인이 직접 자신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상태였다. 그 민원인은 나와 연관이 있었다. 나 때문에 발생한 일은 아니었으나 내 담당이었기에 내가 나서야 했다. 그날 하기로 예정해 두었던 업무 외에 조속한 민원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야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민원은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관계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민원에게 해결되었음을 알리는 전화까지 다 하고 나자 진이 빠졌다. 퇴근해야 할 것처럼 피곤이 밀려왔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몸보다 마음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받는 나로서는 이미 하루를 다 보낸 느낌이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쓸 필요는 없었다. 처음 접하는 일도 아닌데 언제나 내 마음은 먼저 작아지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며 나 스스로를 다잡고 있던 순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언제나 쾌활하여 함께 있으면 늘 웃게 해 주는 선배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선배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선배는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내 글을 잘 읽었다고 했다. 너무 공감이 되어 울컥했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 어느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그 글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한 글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 그 잡지를 선물했었다. 글을 읽고 난 선배는 자신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임종을 지킨 나에게 잘했다며 울먹였다. 나는 선배에게 내 글을 읽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함께 울었다.
선배의 전화를 끊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침부터 발생한 문제로 두세 배 빨리 뛰던 심장도 제 속도를 찾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는 게 느껴졌다. 흐리던 하늘도 맑게 개었음을 알아차렸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이지만 우리 사이에 온기가 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또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결 정돈된 마음 상태로 즐거운 퇴근길에 올랐다. 예전의 나라면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곱씹으며 집으로 가져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저 밑바닥까지 긁어 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은 직장에 두고 퇴근했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서 가지게 된 지혜로움인지 선배의 전화 덕분이었는지 모르겠다.
퇴근길의 목적지인 우리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자동으로 열려야 하는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문이 열리는 어플이 작동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플 확인을 위해 가방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고 있었다. 그때 아파트 안쪽에 서 있던 남자분이 멀리서 걸어오시더니 문을 열어 주셨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가던 길을 갔다. 그 남자분도 원래 있던 곳으로 가 피우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단지 안을 걸어가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그분의 호의가 너무 감사했다. 그분은 아파트 관리인도 아니고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굳이 걸어와서 출입문을 열어 주어야 할 의무는 더더구나 없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이라는 이유로 선뜻 내어 준 그의 다정은 그냥 받기 아까울 만큼 존재감이 컸다. 안 좋은 일로 마음을 많이 쓴 상태여서인지 평소라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몇 걸음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다. 나라도 그 거리에서 걸어와 그렇게 문을 열어줬을까 싶고, 사람들이 마음속에 넣어 둔 다정의 깊이는 얼마나 될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와 집이 주는 안락함을 마음껏 누렸다. 잠깐의 휴식 후에는 식구들을 위해 국과 각종 밑반찬을 정성껏 만들었다. 운동도 하고 TV도 보며 금요일 밤을 마음껏 즐겼다. 여느 때라면 아직도 마음 가득 아침의 일이 남아 집의 안락함도, 나의 루틴도 모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누려야 할 모든 안락함과 일상의 행복을 다 누렸다. 내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한껏 행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할퀴어진 마음은 도처에 널려있다. 나의 마음도 언제 또 상처의 공격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감싸 안아주고 호호 불어 연고를 발라 줄 마음도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하다. 그 덕에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하고, 성장한다. 이제 내 마음은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적게 쪼그라들 것 같다. 우연히 만난 다정이 상처를 필연적으로 낫게 하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월요일 출근길은 더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