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머문 마음
온 힘을 다해 박박 문지른다. 다 쓴 칫솔에 표백제를 묻혀 닦아도 보고 욕실용 수세미를 쥔 손에 힘을 주기도 한다.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자 휴지에 표백제를 적셔 그 위를 덮어 버린다. 욕실 안은 표백제 냄새가 진동하고 벽에는 온갖 휴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사 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인다. 새집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시간이 지나면 새집 또한 다시 헌 집이 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의 현실을 당장이라도 모면하고 싶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욕실 청소를 미뤘던 내게 복수라도 하듯 곳곳에 존재감을 새겨 둔 것 같다. 결국, 이 지경이 되도록 미리 돌보지 못한 건 나의 나태함이었음을 깨닫는다. 차곡차곡 쌓인 게으름은 그렇게 곰팡이가 되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체력이 약하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시든 잎처럼 침대 위에 툭 떨어진다. 한동안 쉬어야 예정된 다음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물건이 많이 없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치워야 할 것이 없도록 원천봉쇄하려는 듯.
주말이면 욕실 청소를 해야 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청소를 건너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중에 직장에 행사가 있었다든지, 마음을 쓴 일이 있었다면 청소는 꿈도 못 꾼다. 한 주 정도 청소를 지나쳤다고 해서 극심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조금 더러워도 눈을 감고 나의 체력 충전을 위함이라고 자조해 본다. 하지만 두 주 정도 청소를 미루면 더 이상 눈감을 수 없이 더러워지곤 한다.
게으름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욕실은 청소하기 어렵다. 변기의 얼룩들도 더욱 힘을 주어 닦아야 하고 세면대도 마찬가지다. 샤워부스의 맑고 투명한 창은 안개가 낀 듯 탁해지고 벽면에는 붉은 물때가 올라온다. 때로 곰팡이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원래의 모습대로 깨끗이 닦으려면 두세 배의 힘을 더 주어야 한다. 심지어 더 이상 닦이지 않고, 예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부분도 생긴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몸은 마음의 조정을 받아 청소 따위 잊고 자꾸만 침대로 간다.
뒤늦은 곰팡이의 습격을 받은 욕실처럼, 돌보지 않은 몸과 마음에도 곰팡이는 어김없이 피어난다.
나는 이십 대 때부터 날씬한 편은 아니었다. 미용 몸무게가 아닌, 건강검진에서 정상체중이 나오는 정도였다. 오십을 코앞에 둔 요즘은 체중계에 올라서기가 무섭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음식들을 줄이는 것이 힘들고 습관이 되어야 할 운동은 자꾸만 맥이 끊긴다. 게으름이 쌓인 나의 몸은 어느새 과체중으로 접어들고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운동과 식단 계획을 세워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기라는 복병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안 하던 운동을 나이 들어 하려니 무릎이 아프거나 발목이 시큰거린다. 아무 운동이나 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몸을 위한다고 한 운동이 오히려 병원 신세를 지게 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필라테스를 했다가 체외충격파를 받아야 했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젊어서부터 운동하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운동의 범위도 넓고 치료를 요하는 일도 없을 텐데 이제 와 무언가를 시작하려니 제약이 많다. 무엇보다 운동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척 힘겹다.
마음은 또 어떤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학용품처럼 내 마음이 보이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불안이 되고, 타인의 시선을 헤아리다 내 마음은 놓쳐버리기도 했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은 미처 읽지 못한 카톡처럼 늦게 도착했다. 곰팡이가 이미 번진 뒤였다.
몸과 마음 곳곳에 피어났던 곰팡이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피어나는 데 걸린 시간보다 없애는 데 시간이 더 든다. 불어난 체중을 줄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도 할 수 없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단번에 많은 체중을 빼는 다이어트는 생각지도 않는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움보다 내 안의 건강함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건강한 루틴을 정해 나를 돌보는 길만이 지긋지긋한 요요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진리도 알고 있다. 더디긴 하지만 먹는 양을 조금 줄이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애정해 마지않는 믹스커피 마시기, 하루쯤은 괜찮다며 운동을 빼먹던 안일한 마음이 내 삶 곳곳을 곰팡이로 덮었다.
마음에 피어난 곰팡이는 더 지우기 어렵다. 한번 안착한 곰팡이는 없어지는가 싶으면 비슷한 상황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다시 꽃을 피운다. 내일 예정되어 있는 민원전화는 잘 해결될까,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큰 병이면 어쩌지, 저 사람의 말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등등 불안과 걱정 같은 곰팡이들이 지워지지 않고 검은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늦지 않게 병원에 가서 약을 먹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음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해준다. 내 마음에 피고 지는 곰팡이들을 조금씩 닦고는 있지만 검게 물든 곰팡이가 하얗게 지워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를 위해 계속 닦는 행위들을 반복할 뿐이다.
주말이 돌아왔다. 변기에는 붉은 물때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양치할 때마다 조금씩 닦았던 세면대도 여태까지는 하얗다. 바로 지금이다. 닦아야 할 때다. 욕실 2개를 모두 청소하기엔 역부족인 컨디션임도 감지한다. 이를 닦으며 세면대를 슬슬 닦는다. 일회용 솔을 꺼내어 변기도 닦아본다. 눈부시게 빛나지는 않아도 곰팡이가 내려앉을 틈은 막아둔다. 나머지 한 욕실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은 꼭 하기로 한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 삶을 곰팡이로부터 방어하는 마지막 선을 미리 설정해 둔다.
조금은 깔끔해진 욕실 문을 닫으며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영하의 날씨를 감안하여 운동을 포기하려는 안일함을 밀어내고 실내 자전거에 올라탄다. 특정 운동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그곳이 어디든 몸을 움직여 본다.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과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오늘의 곰팡이를 조금은 지웠을 것이다. 마음 표백제인 칭찬도 틈틈이 뿌려주면서 잘 해낸 나 자신을 토닥여본다.
새집으로 이사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둔다. 지금의 집도 나쁘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내일이 빛날지 짙게 검어질지는 오늘의 내 몫이라고 다짐해 본다. 표백제가 묻어 있던 휴지를 걷어 낸다. 벽에는 여전히 옅은 흔적이 남아 있다. 아마 다시 번질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채로, 닦고 또 닦을 것이다. 내가 닦고 있는 것이 곰팡이인지, 나 자신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