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면 La Jetée

by Amoursun

크리스 마르케의 ‘라 제떼(La Jetée)’는 1962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독특한 SF 단편 영화다. 이 작품은 28분 동안 정지된 흑백 사진들과 내레이션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영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라 제떼’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아서 기억의 조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배경은 제3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파리다.과학자들은 시간 여행을 연구하며, 주인공인 한 남자를 과거와 미래로 보내기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 공항 환송대에서 본 한 여인의 얼굴과 그 순간 벌어진 폭력적인 사건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이 기억을 통해 시간 여행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랑과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의 존재와 시간의 의미를 탐구한다.



사진, 기억, 그리고 시간의 단면

‘라 제떼’는 사진이라는 ‘단면’ 매체를 이용해 인간의 기억과 시간의 복잡한 구조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시간을 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로 보며, 주인공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순간이자 시간과 존재의 깊은 깨달음으로 해석된다. 과거의 기억은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순간의 총합’이 되는 것이다.


인간, 기억, 그리고 영화의 본질

주인공은 단 하나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공항에서 본 여인과 폭력적인 순간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파리와 지하에서 강요된 시간 여행 실험은 그 남자를 감정적으로 얽매며, 시간과 기억이 개인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준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쌓여 가상 세계를 만들고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미래, 사랑과 죽음을 넘나들며 ‘진짜’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적 유산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후 테리 길리엄 감독의 ‘12 몽키즈’ 등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라 제떼’는 영상미보다는 내러티브와 이미지가 전달하는 감성에 집중해, 영화가 반드시 움직이는 영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실재’와 ‘가상’,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경험하는 시간 여행과 죽음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존재의 한계와 불가피성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라 제떼’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와 현실 속에 숨겨진 영원한 시간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기억과 시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며,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예술 실험으로서,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Chris Marker-La Jetée

https://youtu.be/Pf4AY_DI9BE?si=KP31K5B8yXI2rf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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