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귀한 자원 구아노(Guano)는, 석유나 금처럼 인간의 탐욕과 맞물리며 비극적인 역사를 낳았다. 페루 태평양 연안의 친차(Chincha) 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들로, 펠리컨을 비롯한 무수한 바다새들이 집단 서식했다. 오랜 세월 동안 새들의 배설물이 굳어 쌓이며, 그 두께가 수백 미터에 이를 정도였다.
처음 유럽인들에게 구아노는 단순한 ‘이상한 흰 가루’에 불과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산업화와
인구 증가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농업 생산성 향상이 절실해졌다. 과거 잉카인들이 이미 비료로 애용했던 구아노의 가치가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840년대부터 수많은 증기선이 페루의 구아노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유럽의 금융 자본가들과 무역업자들이 대거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페루는 ‘구아노 황금기’라 불리는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렸다. 국가 재정의 대부분이 구아노 수출에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분별한 채굴로 구아노 매장량은 빠르게 고갈되었고, 페루 경제는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게다가 구아노와 함께 질산염 자원이 뛰어난 가치가 있음이 밝혀지자, 남미 서부 해안의
비료·질산염 부유 지역을 둘러싼 열강과 인접국들의 경쟁이 격화되었다.
결국 1879년, 볼리비아와 칠레 사이의 분쟁이 ‘태평양 전쟁(구아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페루가 동맹국 볼리비아를 지원하며 참전했지만, 전쟁은 칠레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페루와 볼리비아는 주요 구아노·질산염 지대를 상실했고, 페루 경제는 붕괴 수준의 타격을 입었다.
구아노는 한때 국가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결국 자원 의존과 국제 경쟁, 그리고 전쟁이라는 비극을 불러온
양날의 검이었다. 자연이 수만 년에 걸쳐 만든 축복은, 탐욕과 무절제 앞에서 불행한 유산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