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뒤에 다음이 있을 수 있을까? 서류 더미에 불안하게 서있는 사람은 버티는 것일까?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것일까? 소설일까? 아니면 에세일까? 주인공 기석의 이야기는 고구마 백개쯤 입에 물고 읽어야 했다.
기석의 모습은 미래를 볼모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충고를 믿고 살았던 게다가 성실과 인내가 좌우명쯤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기억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인생이 실패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p10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잠을 쪼개 수영이나 피트니스에서 땀흘리며 자기관리를 하거나 어학이나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는 자기계발에 우리는 자신을 들볶는시대를 살고 있다.
죽는다는 것 아니, 죽음을 앞둔다는 것. 그래서 인생을 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에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게 인생이라니!"라며 억울해 하기보다 "더 살아도 큰 차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도대체 그건 어떤 심정일까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묘하달까, 독특하달까. 아무튼 그런 소설이다.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슬픔보다는 체념이 좀더 아프다. 도대체 무엇이 30대의 젊은 청춘에게 삶을 놓아버리게 만들었을까.
아프다는 것이 혼자 겪어야 하는 고독보다 고통스럽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예리하게 살갗을 베는 기분. 그래서 그런지 무덤덤한 끝에 갑작스럽게 형의 시점으로 옮겨가는 부분조차 죽음이 처연해지지 않는다. 죽음을 꽤나 냉정하게 그려내는 책이다.
근데 궁금해졌다. 죽고 난 이후, 괜찮은 인생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