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붉은 장미

by 암시랑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읽고 난 지금, 단순히 시대물 정도로만 넘기기엔 그 무게가 남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살포에 맞아 죽는 고래가 뿜어 올리는 피의 흔적을 고래잡이 선원들은 <붉은 장미>라고 부른다."라는 말이 이유도 모르게 피를 끓게 만들었다. 오래전도 아닌 1986년에 고래사냥이 금지된 것을 보면 이렇게 빠르게 기억에서 잊힌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그동안 얼마나 남획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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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엔 어김없이 파도가 인다." p15


바다도 인생도 어김없이 파도가 인다는 중의적 표현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주인공 로이를 둘러싼 일들을 자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살을 에는 듯한 겨울 항구의 추위와 찬바람이 살을 파고들기도 하고 거친 바다 위를 오르내리며 흥분과 긴장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하지만 자세해도 너무 자세한 묘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울산 장생포 포경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멀미가 날 정도다. 귀신고래를 맞닥뜨리기까지 너무 긴 여행이었다.


소설이라지만 주인공 로이는 실존 인물로 1912년 초 미국 자연사 박물관 학예사의 신분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생포 포경기지를 방문하여 소설 속 로이처럼 그때의 일들을 기록하였다. 이 소설은 그 기록을 토대로 엮어 냈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가슴을 점점 먹먹하게 만들어 딱히 뭐라 서평을 하기 어렵다. 조선 앞 바다에서 벌어진 포경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과 맞물리다 보니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하고 한숨과 탄식으로 자주 쉬어야 했다.


미국인으로 미국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본 로이와 조선인으로 미국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보려 했던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이 겹쳐지면서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힘들어야 했던 이유가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다. 나라가 없어졌는데 민족은 더 울분에 휩싸이는 이 알 수 없는 민족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로부터 10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옅어질 대로 옅어진 민족성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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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이 책은 장엄한 서사가 거대한 귀신고래가 바다를 유영하는 것처럼 가슴을 휘젓고 말았다. 한편으로 작가의 감정선이 그럴지 모르겠으나, 일본인의 외모 묘사를 동양인을 통칭해 '작고 찢어진 눈(p29)'으로 표현한 부분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보니 살짝 불편할 수도 있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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