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일지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말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너무 서러워서 몰래 숨어서 운 적도 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음 직한 '숨어서 우는 일'이 이처럼 공감된 적이 있을까 싶다. 타인의 눈에 비친 행복한 내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나를 발견하는 일이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다독이며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주 조금, 병아리 오줌 정도 생겼다.
나보다 한 살 많고 가능성의 '가'가 좀 더 많았던 작가의 '신뽀리'를 기억한다. 머리 통에 삼각형을 주렁 달고 짧지만 심장을 벌렁이게 만들던 말들. 매혹되고 감탄하고 때론 가슴을 움켜쥐었던 1997년이었다. 내가 장애인이 되고 7년 후의 일이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세상을 기웃대던 시기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내 설 자리가 희미해지는만큼 기억에서 신뽀리는 빠르게 잊혔다.
22년이 지난 얼마 전, 운전 중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스치듯 들린 "쉬이 읽히지만 쉬이 덮이지 않는'이란 시구절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하필 비도 추적추적하게 내려 밖에 습기가 온통 차 안으로 빨려 드는 것처럼 축 처지던 날이었는데 갑자기 차 안을 뽀송한 진공상태로 만드는 말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을 제쳐놓고 시구절을 찾아야 했다.
작은 소리로 시를 읊조려 본다. 작가의 이 시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이 책은 그동안 작가에게 익숙했던 신뽀리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오리가 그것도 미운 오리가 등장한다. 석촌호수에 힘들게 떠서 희망을 전하던 러버 덕이 겹쳐졌다. 러버 덕이 미운 오리 새끼였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작가는 그동안 삶에 지친 이들에게 다독다독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짧은 에세이와 시와 그림으로 전한다.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하고 간혹 코끼리 같은 이야기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죽순처럼 마음을 세차게 흔드는 이야기가 담겼다. 주옥같다고 하기엔 결이 다른 가볍게 어깨에 손을 올리듯 위로가 되는 말이랄까.
문득 외롭다고 느낄 때 친구가 "너에게 가는 중이야."라는 말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한데 나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있던가? 누구에겐가 가는 중이라는 말이 참 고맙고 따뜻하고 그랬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만 있어 설까?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이다. 특히 떠나는 이들을 말리기보단 부러움에 폭풍 격려하던 나는 경쟁자였던 게 본심이었을까? 적잖이 당황스럽다. 난 진심이었다고!
그런 건가? 요즘 아이들에게 '되기 싫은 게'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에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나이를 곱빼기로 불려가며 어른인 척 자처했었는데. 우린 왜 그랬을까? 이렇게 고단하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비굴하게 보내야 하는 어른이 왜 그렇게 되고 싶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더럽게 슬퍼졌다.
이 책은 느리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 취급받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여전히 느리지만 괜찮다고, 또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러버 덕이 되어 주는 듯하다. 읽고 나면 가슴이 몽글해지고 한참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