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es of Santiago de Compostela in Fran
"훌쩍,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어진 틈새로 어쩌면 추락했을 것이다." p14
하여 추락하지 않기 위해 걷는 것을 선택한 저자의 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롯이 걷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 그것도 홀로. 묵묵히 버텨내는 삶. 나는 걸을 수 없다는(뭐, 휠체어를 탄다는 것 역시 나름 걷는 것이지만) 그러한 고행의 짜릿함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굳이 길 위에서만 걷는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말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 그리고 '내 걸음걸이 속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 인생이란 길 위에서도 같을 것이다.
분명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므로.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싶었다. 망설여서 후회하느니, 결정했다면 바로 떠나야 한다고 내 속의 내가 외쳤다.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다행히 내게 그만한 용기가 남아 있었다." p28
하지만 저자와는 다르게 내게는 그만한 용기는 애초에 탑재되지 않았던 듯하다. 제기랄스럽게도. 비단 순례가 아니더라도 갈망하는 일이 있다 해도 이후의 일들이 염려스러워 줄곧 다른 이유를 찾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사표는 여전히 가슴에만 있다.
순례란 무엇일까? 걸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묻다가도 생각을 위해 걷는 것은 아니라는 대답에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아니면 '해야 할까?' 발바닥은 고사하고 사이사이 물집이 터지고 무릎이 시큰거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걷는다는 행위를 잃은 지금의 나는 가늠하기 더 힘겹다.
"호리호리한 키에 괴나리봇짐처럼 짐이 가볍다. 훌쩍 날아가는 것만 같다. 사는 데에 그리 많은 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짐들. 최소의 것들. 그래야 저렇게 훌훌 날 듯 걸을 수 있을 테니깐." p160
산다는 건 가벼워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기도 하다. 굳이 날 듯 빠르게 걸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묵직하게 눌리듯 천천히 걸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대답과 함께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데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만든다. 그러는 한편 순례자의 길에 동행하지 못하는 질투가 일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도 골고타를 오를 땐 가볍진 않았을 테니까라는 치기 어린 변명이 불쑥 솟았다.
순례를 시작할 때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최대의 무게로 시작하지만 걷는 동안 버릴 수 있는 것들과 생각들을 조금씩 버리는 일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될 때가 돼서야 가볍게 된다는 깨달음 얻는다. 그건 살면서 처음부터 무겁지 않게 시작하는 게 필요함을 깨닫는 일일지도 모른다.
"When can I meet ‘me’? Is this possible? 나는 언제 '나'를 만나게 될까? 그게 가능하긴 해?”라는 자신과의 조우를 바라지만 끊임없는 잡념과 상념은 점점 지치게 되고 결국 그 또한 순례가 된다.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졌고 그 시간들이 나를 과묵하게 만들었다." p290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왜?'라는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처럼 책장을 따라 넘나들었다.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이 터져도 그들은 왜 꾸역꾸역 다시 신발 속으로 고통스러운 발을 욱여넣고 걷는 것일까? 왜? 길 위에 짙게 늘어지는 외로움에도 덜어낼 친구를 만들지 않으려는 걸까? 도대체 왜?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에 답답증을 느끼면서도 왜 읽고 있을까? 그렇게 우린 그저 순례길을 함께 걷는다.
이 책은 단순히 '길'을 걷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외로움, 스치는 인연, 스스로부터의 고독, 결국 타인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는다. 900km의 순례길을 내 일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걷고 있다.
산티아고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