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 더 마음에 들만한 것, 원하는 것에 더 가까운 걸 찾기 위해 '이왕이면' 하고 고심할 때 아마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 p40
우스운 일이다. 아니 우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이라는 말이 체념이 아닌 다시 힘을 내는 말이므로. 작가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 한때,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제주도 살이를 3년 조금 넘게 했었더랬다. 연동이라는 시가지에 낙지볶음으로 아주 유명한 집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에는 발 빠르게 찾지 않으면 오래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이었다.
한번 먹어보겠노라고 아내와 함께 야심 차게 시도를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아내와 나는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아내는 느긋하게 기다리다 맛있는 걸 먹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난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생각을 가진 기다리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다리다 먹지 못하는 횟수가 거듭되지 포도를 먹지 못한 여우가 실 것이라는 핑계를 댄 것처럼 우리 부부도 '저렇게 기다리다 먹으니 맛있을 수밖에'라며 아쉽지만 옆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집과 바로 옆에 붙어 있고 같은 낚지 덮밥을 파는 식당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래 기다렸던 손님을 마주한 듯 화사한 미소와 우렁찬 인사를 받았다. 식당 안에는 한 명이 등을 지고 식사 중이었다. 심지어 낚지 덮밥이 아니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 옆집과 이렇게 비교가 될까. 먹고 싶은 낚지 덮밥을 시키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래도 옆집이긴 해도 그동안 기다리며 애쓴 것도 있고 해서 먹고 싶었던 낚지 덮밥을 시켰다.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우리 부부는 땡그래진 눈을 마주했다. '오! 맛있다!'라는 감탄의 눈빛이었다. 배고프게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맛있으면 진짜 맛있는 게 아닐까. 그날 이후 우린 기다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정도로 맛있는 낚지 덮밥을 먹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리고 한참 후에 그렇게 궁금했던 낚지 덮밥을 먹어볼 수 있었는데 별로였다. 기다림의 미학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깨달을 것은 때론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행운처럼 포만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야 인생이라는 것.
"무겁고 아픈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덮어가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p52
읽다가 뜬금없고 생뚱맞게 '감기처럼 왔다가는 일상의 우울'이란 문장에서 멈췄다. 왜 우울을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라는 생각으로 쉬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감기는 대부분 충분히 쉬고 약을 먹으면 쉬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쉬지 못하면 폐렴이나 여러 합병증을 유발하는 무서운 녀석으로 돌변할 수 있는데.
우울도 그렇다. 쉽게 떨어지는 감정의 레벨이 스트레스나 관계의 조절로 회복이 쉽게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결코 쉬운 녀석은 아니다. 그만큼 나를 다독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막막한 내일을 앞에 두고서도 곧잘 낙관하는 습관은 어느정도 이날에 빚지고 있다.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건 언젠가는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올 수 있다는 의미라고지난날의 내가 나를 토닥이는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언젠가는 말이다." p143
그리고 '오늘의 행복을 채집한다'라는 문장이 나의 오늘을 설레게 한다.
쓸모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문장 위에서 천천히 느릿한 걸음이 된 듯하다. 어릴 적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쓸모없는 놈'이라거나 '널 어디다 쓰니'같은 말에 마음 상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속이 쓰렸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된 매뉴얼을 쥐여 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에 쏙쏙 박히게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쓸모'를 재단하는 일이라니. 어린 시절의 나나 쉰이 넘은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잘 쓰이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이 책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거창하게 특별한 인생 목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작은 일들에서 소소한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 위로를 건넨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