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생경한 이름. 도대체 누구시길래 추천인이 이리도 화려한지. 성직자에 공무원에 소설가 그리고 사회활동가. 부류도 이리 다양하시니 나름의 작가의 철학적 스펙트럼이 나름 넓겠다 싶어 흥미를 부추겼다. 나 역시 요사이 사회문제에 꽤나 흥미로워지고 있던 차다.
시간, 공평, 청년, 비정규직, 삶, 불공평, 노동, 자유, 노력, 공정, 게으름 그리고 더 많은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겼다. 책 표지에 그려진 인생 시계 위에 저자 인생 궤적이 돌아간다. 멀끄미 쳐다보다 내 삶의 궤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과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이겠다는 자조가 시작도 안 했는데 입이 쓰다.
추천사에서 의자놀이를 빗대어 지적한 자본주의 노동자의 한계는 아무리 공정하게 설계되더라도,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누군가는 서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는 말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한다.
그런데 그저 체념적인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평한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노동 현장의 한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시작점'을 말하는 저자의 고민에 함께 선다.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에 대한 불평등 혹은 불공평을 이야기하는데 '시간'에 집중하는 이 책이 나름 '노력'이라는 결과에 대한 공평한 수단, 누구나 노력하면 '뭐라도 된다'(몰랐다. 나도 모르게 주입된 개념이었다는걸)는 생각들이 퍼즐에서 튕겨져 나온 조각들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누구는 3루에서 태어난 것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라는 착각은 시작부터 계급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말이다. 무상교육으로 모든 학생을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것일까.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그 안에서도 100만 원짜리 인강을 듣는 학생과 10만 짜리 혹은 무료 인강을 들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차이는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주어진 기회는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자유. 자유는 내게 '주어진' 생존의 시간을 내가 '누리는' 시간으로 전환합니다. 자유인으로 존재하는 시간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누리는 시간입니다." p50
놀라움의 연속이라면 과장일까? 아는 것을, 아니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로 깨닫는 일을 경험하게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서 답답하고 부끄럽고 막 그렇다.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삶이며, 그러하기에 우리 삶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p87
줄곧 노동의 팍팍함을 눈으로 머리로 살갗으로 느끼게 만들더니 이리 삶을 선물로 정의해버리다니 저자의 이런 긍정 마인드를 어쩌지 못하겠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면 사망률이 54%나 늘어난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내가 그 범주에 들어 있다는 현실이 선물일 수 있을까.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난 아직 더 살고프다.
노동의 외주화에 대한 내용은 읽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다. 고구마 백 개쯤 물어야 하는 답답함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사이다는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고구마는 점점 목을 메우고 있는 현실. 이제 곧 딸아이를 그런 그곳으로 내몰아야 할 시간이 오는 게 두렵다.
'괜찮은 직장'이라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을 괜찮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내일의 시간을 당겨쓴다는 저자의 말엔 달리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학자금 대출이 없던 시절, 부모님이 따박따박 내주는 대학 등록금을 모아 땅을 사는 게 낫겠다고 자조하던 때가 있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최루탄 속을 헤치며 돌무더기를 던져대던 그때의 청춘들이었던 우리가 기성세대 됐음에도 여전히 세상은 나아지지 않고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기능을 잃었다. 그 시절을 건너 온 사람으로 지금 청춘들에게 미안함을 금치 못하겠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p143
로버트 디세이의 '게으름 예찬'이란 책을 보면 '게으름은 실패라는 의미를 생각할 수 없는 데다 오히려 시간을 지배하고 행복을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결코 게으름이 나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근로와 노동의 미묘하지만 어마어마한 차이를 깨달으면서 결국 21세기 건 더 많은 세기가 자나도 자본주의하에서 결코 바뀔 수 없는 이 노동의 문제가 인간은 쓸모와 가치를 재단한다는 점에서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겠으나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엄적 존재임을 잃지 않기를 그리하여 행복이 저당 잡히지 않길 바라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비록 사생대회에서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장려상 딱 한 번 받아봤다 할지라도 문학적 필력은 지적이고 학술적 깊이에 더해져 노동이 피상적 혹은 궐기적 내지는 투쟁적으로만 읽히지 않고 당장의 내 삶을 바라보게 하는 꽤나 만족스러운 인문서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가 되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