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정규직 남성 노동자이자 비장애인이고 이성애자다."
이 말이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다수자이며 주류라는 것.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와 반대 급부의 사람은 소수자에 비주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분법 논리,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나누는 것.
이 의미를 확대해 보면 소수자이자 비주류인 사람들은 상대적 낮은 계급에 위치하며 경제적 상황 역시 빈곤에 가깝다는 현실. 즉, 을의 위치이며 함부로 대해도 크게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낼라치면 득달같이 받게 되는 것이 바로 혐오다. 그것도 극도의 혐오.
프롤로그의 이 비장한 혐오 표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시적 구분은 적잖이 흥분감을 줬다. 비주류고 소수자인 내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이 현 대한민국의 상황, 혐오 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는 점에서 '혐오'에 대한 명시적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과 나아가 논의 혹은 논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은 확실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주류의 반대급부에 대한 인간적 존중, 인권적 보호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저 활자에 갇히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은 노파심일까.
결국 혐오 표현은 대상 자체에 대한 혐오도 문제지만 그 혐오가 소수자를 향할 때 만들어지는 그 외의 부가적 폭력적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폭시킨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아주 오랜 시간 차별과 편견을 받아 온 장애인이 갖게 되는 피해 의식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들이 드러내는 목소리를 단지 불편하고 거칠다는 이유로 모든 장애인을 혐오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에게 날선 표현을 넘어 폭력이 행해지는 일은 심심치 않게 목도되는 일이다.
"실제로 혐오 표현이 누군가를 지칭했건 아니건, 그 해악은 소수자 집단 전체에게 미친다. 혐오 표현의 해악이 이렇게 '전염성' 또는 '집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혐오 표현은 일종의 '집단 명예훼손' 또는 '집단 모욕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혐오 표현은 일반적인 모욕이나 명예훼손보다 그 해악이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해악이 개인만이 아니라 소수자 집단 전체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p77
이 책을 읽는다는 것에서 나는 뭘 바랐을까. 이런 혐오 시대에 나는 그다지 혐오적 표현을 내뱉는 인간이 아니라는 확인? 아니면 그 정도 인격을 가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혐오를 일삼는 부류의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안도감? 이 책을 펼치기 전과 후는 스스로 혐오에 대한 인식을 내재화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아니 노력하느냐 모른 채 하느냐가 맞을지도.
어쨌거나 단순히 집단적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모욕적인 말들, "왜 장애인이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려고 지랄하냐"라거나 "난 동성이 더듬는 건 소름 돋지만 그들의 인권은 존중하는 편이야"라는 식의 허용적 표현이, 또 "더운 나라 애들은 게을러"라거나 "뚱뚱한 애들은 한여름에 나다니면 안 돼" 같은 혐오적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들은 사실 많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장애인으로 소수자로 이런 혐오 시대를 살면서 나 또한 나 이외의 다른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발언들을 무심코(사실 진짜 무심코였을까) 내뱉었던 사실들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에게 혐오에 대한 많은 사유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쁜 효과를 낳고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p88)"라는 말을 오래 기억해야 함을 명심한다. 좋은 의도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아야 하며,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좋은 의도에 이런 고통을 받는 일은 당연히 옳지 않은 일이다.
지하철에도 거나하게 술에 취한 취객이 장애인을 돕는다며 다가선다면 당연히 그는 도움을 거절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취객에게 들어야 하는 말은 수긍이 아니라 "도와준대도 지랄이야"라는 욕설이라면 그건 좋은 의도였을까?
"편견이 혐오로, 혐오가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p99
이 책은 솔직히 읽어내기 쉽지 않았다. 혐오와 증오 그밖에 배제와 차별 같은 정의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을뿐더러 여전히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며 저자가 풀어내는 보편적 가치 그러나 일부 신념처럼 여겨지는 논의에 대한 부분들은 그저 읽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원론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분명 그냥 읽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끝내야 하는 것으로 결론 내버리기에는 아주 심오하다. 끝으로 유엔과 자신이 지키기로 맹세했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당신들의 편에 선다"던 그리고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편에 서"라고 요청하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연설은 쉽게 식지 않는 뜨거움을 주었다.
저자의 연구적 성과를 바탕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흥미로운 주제와는 다르게 몰입은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언제고 누구라도 해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해 볼 만하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