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시] 시가 나를 안아 준다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by 암시랑

딸아이가 건네준 시집이었다. 그동안 그러니까 반년 동안 다른 읽을 것들에 밀려 숨죽이고 있던 시집. 이리도 심장을 벌떡이게 만들 것을. 너무 무관심했음을 시집 안에서 툭 하고 떨어진 딸아이의 마음이 적힌 생일 카드를 보고 알았다.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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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봐왔던 시집과는 다른, 어쩌면 그동안 읽어왔던 시와는 다른 그렇게 생소한 시인의 말들이 허투루 읽히지 않았다. 곱씹고 책장을 덮고 시선을 멀리 두게 만드는 시가 적지 않다.


시작부터 오래 머물게 된 글. 시인 역시 그러했다 말했던 마더 테레사의 글이다. 나는 종종 강연에서 자신보다 없거나 불편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베풂과 배려 혹은 보호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어쩌면 그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되 삶은 잃는 게 더 많을지도 모름을 일깨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잠시 어지럽다.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은 내일이면 이미 죽은 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이 필요한 건 오늘입니다."


삶이 궁핍한 이유로 산다는 것이 불확실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함을, 21세기인 요즘에도 여전히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 하는 장발장은 있음을 종종 잊는다. 그래서 이 글이 날카롭게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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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돌아보았던 시선 끝에는
그들의 말과 결코 만나지지 않을
띠 모양의 시간이 평행으로 흐르고 있었다
표현되어 나온 말 뒤에서
조용히 방심하고 있던 세계

p17 밤, 고이케 마사오


아, '조용히 방심하고 있던 세계'라니. 너무 매혹적인 문장이 아닌가. 말 그대로 조용히 방심하다 가슴에 훅 하고 들어온 문장이다. 난 어떤 모양의 말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고 있을까. 누군가의 방심한 세계를 흔드는 말이 아니었으면 싶다.


이 시집은 시인이 엄선한 시와 (개인적으로 그림은 잘 모르는 탓에) 생소한 화가들의 그림 그리고 시인의 글을 한데 모았다. 독특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깊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다기보다 차분하다는 느낌이랄까. 달리 보면 줄을 따라 줄줄 읽어 가는 시가 아니라 쉬이 넘어가지 못하게 줄을 잡고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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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이 영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이제 별들도 필요 없으니 모두 지워버리라.
달은 치워버리고, 해는 없애버리리라.
바닷물은 쏟아버리고 숲은 베어버리라.
이제 그 무엇도 소용이 없으니.

-p75, 고별의 블루스, 위스턴 휴 오든


시인은 사랑에 얼마나 절절하고 깊은 아픔을 가졌길에 이리도 강렬하게 감정의 날을 세웠을까. 빛도 바람도 베일 것 같은 날 선 시인의 사랑을 계속 읊조리게 된다.


가볍게 튀어 오르는 시들은 아니지만 무겁게 내려앉는 91편의 시는 침대 맡에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조용히 읽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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