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울하다는 크기의 기준은 뭘까.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정도일까? 아니면 그냥 혼자 있고 싶다는 징도 일까? 우리는 이 우울의 크기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더 많이 흔들리는 중은 아닐까.
애써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포장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쉽지 않다. 한편 왜 평범하려 애써야 하는지가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조금 다르게 행복해도 될 텐데 말이다. 사실 누군가의 우울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일은 꽤나 힘들다. 우울의 경계를 알지 못할뿐더러 읽다 보면 그들의 우울이, 그 질척한 침습이 시시 때때 내게 묻어 이내 나까지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같이 아프고 함께 울고 결국 늘어지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알아채는 게 부담스러워 자신의 삶이 적힌 매일의 기록마저 보통과는 다르게 거꾸로 간직해야만 했던 작가의 이야기가 쓸쓸하면서 힘겹게 다가온다.
9월 14일의 기록에서 결국 나올락 말락 하던 것이 주르륵 흘렀다. 분명 들었음에도 섣불리 아내의 불안을 덜어내려 하지 않은 남편의 따뜻함에, 소주 한 잔과 신경안정제 한 움큼을 앞에 두고 뭘 해야 할지 망설이던 내가 작가의 자리 옆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하루아침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움직이는 게 가능한 나는 이미 작가가 말한 보통일 수 없었다. 죽어라 재활을 해도 결국 나는 다시 매트에 설 수 없을뿐더러 타인의 시선을 받지 않고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그래서 온전한 직립보행은 이미 물 건너 같다는 걸 깨닫고 나니 그저 체념만 남았었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은 점점 의미를 찾을 수없었고 이왕 먹어야 하는 약을 소주 한 잔에 털어 넣는 편안함을 인터넷은 너무 쉽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 감정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아 책장을 잠시 덮었다.
"한순간의 선택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직선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p56
이 책을 읽으며 친구가 생각났다. 오래된 친구. 얇은 실처럼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던 그 친구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며 그 우울을 이야기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제라도 죽음이 매달려 있는 작가처럼. 우울한 것 같아라고 살포시 미소 짓는 친구가 위태롭게 느껴져 심란했던.
내가 잘 모르는 걸까. 작가는 시종일관 위로를 바라지만 정작 위로받기 꺼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위로를 건넨다면 그 위로에도 미안해하며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또다시 자책하며 다시 우울이 뫼비우스 띠처럼 끊이지 않으리라는 느낌.
"너무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할 가치가 있다는 신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p157
사람과 만나면서 그것도 초면인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감춘 그래서 "거짓말이 싫지만, 진실은 더 싫다"라는 작가의 마음에 저릿해졌다.
"어쩌면 외로움은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흘러들어오는 것일지 모른다." p196
온몸에 힘을 옥죄고 책을 읽는 데다가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지친다. 낮은 숫자에서 높아지고 다시 낮아지는 숫자에 정말 끝이 나면 어쩌나 싶은. 그러다 다시 높아지는 숫자가 어쩌면 '살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반가움이 드는 게 다행이다 싶을 즈음 '시도'했다던 그녀의 안부가 걱정됐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작가가 좀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도 써내길 희망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죽고 싶다'라는 말을 결코 쉽게 내뱉지 못할듯하다. 아니 하면 안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