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도시건축]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성장하고 기뻐하고 상상하라

by 암시랑

저자의 '도시 이야기' 시리즈 중 두 번째 편을 읽는다. 이 책은 '도시를 읽는 CEO: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의 개정판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인간다운 이야기가 '도시'라는 희망으로 썼다는 저자의 책은 도시이자 인간이 담겨있다. 그래서 건축과 관련 없는 내게도 흥미롭다.


'호기심은 발동하게 하는 힘이다.'라는 말이 강렬하다. 발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곧 박차고 나갈 듯한 역동이 느껴져 두근댄다. 한데 근래 나를 발동하게 하는 호기심이 근래에 있었을까.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아이들 낳고 키우고 반백년을 여전히 도시에서 살지만 내게 도시는 언제나 회색이다. 환갑이 넘어도 저자처럼 생동감 넘치게 컬러풀할 수는 없을까. 그 컬러가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내게 칠해질 수 있길 바란다.


환갑이 넘은 저자의 기억에 놀라 자빠질 정도다. 유년기 종로통의 기억의 또렷함이나 풍경화처럼 느꼈다던 전주의 성곽 묘사는 너무 섬세해 보지 못했음에도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성동구 옥수동 산비탈의 그 위험천만한 길에서 뛰놀던 기억이 아주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나와 너무 다르다.


"'끌린다'라는 현상이란,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설레는 그 어떤 화학작용이다." p36


그랬던가. 난 두려웠던 걸까. 난 웬만해선 길을 잃지 않는다. 한번 만든 길에서 좀체 벗어나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아내와 첫 데이트. 성남에서 영등포 신길동까지의 도로는 생경함을 넘어 식은 땀나는 길이었다. 고작해야 양재동을 넘어서는 일이 없는 수준급 길치인 내게는 정말 최상급 난이도였달까. 아내를 바래다 주는 길은 무려 20분을 돌아가는 길이었음에도 빠른 길을 혹은 새로운 길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기름값 아까운지 모르고 왜 이런 짓을 하냐고 혼을 냈다. 길치인 내게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맘 놓고 길을 잃어 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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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를 걸어보는 게 로망인 내게 런던이 혼란스러운 길을 가진 카오스적 도시라니 의외다. 반면 파리는 균질 혹은 균일하다고 저자는 평가하는데 두 도시가 이렇게 확연하게 차이가 있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런던은 속으로 압도하고, 파리는 겉으로 압도한다.(p87)"라는 저자의 말이 더욱 가열차게 두 도시를 상상하게 만든다. 근데 프랑스 거리는 개똥이 너무 많은데.


도시, 서울을 한강을 기준으로 북과 남을 장소(place)와 공간(space)으로 구분하는 저자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그저 빈부의 격차로만 보지 않는 속물적이지 않은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읽다가 흥미로운 개념을 찾았다. 저자는 낯선 사람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은 다름 아닌 '성의가 바탕이 된 통찰'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 도시를 읽다가 뜬금없이 사회복지가 가져야 할 제안적 자세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어려워진 경제에 소외된 이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성의로 무장한 통찰적 제안하는 일.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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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도시, 도시 중의 도시, 최정상의 도시인 뉴욕의 경쟁과 탐욕이 빚어낸 폭력성을 지적하는 내용은 과연 도시가 어떤 인문학적 의미를 담아야 한지를 명확하게 그려낸다. 저자의 통찰은 말 그대로 '지속 가능'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분수를 지키며 분수를 키우라는 것이 결코 모험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치밀하게 모험하라는 뜻이다. 냉철하게 모험하라는 뜻이다. 자신을 가장 냉철하게 대하자." p156


도시 이야기지만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은 도시를 통해 '나'를 되짚어 보는 통찰적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다. 분수를 지킨다는 그 어려운 말을 현실에서 직장 내에서 지켜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칫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웃음 가득 담긴 분수를 폄하하는 부류들은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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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가 살고 싶은 도시 10위 안에 꼽힌다니 살짝 놀랐다. 그새 바뀐 걸까? 아니면 내가 그때 보지 못 했던 걸까. 비록 15년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내 기억은 저자의 평가와 좀 다르다.


출장으로 프랑스 앙시를 가는 방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렌트해서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루트였다. 새벽에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어수선했고 보행이 불편한 우리를 수화물장으로 안내해 주던 공항 픽업 서비스의 전동차를 운전하던 직원의 운전은 거칠고 난폭했다. 또 호텔로 가는 택시 역시 거칠기는 매일반이었다. 안전벨트를 했음에도 손잡이를 얼마나 꽉 쥐고 갔던지 도착해서는 손에 쥐가 나서 펴지질 않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놀랍게도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었다. 바쁜 일정이라 도시를 걸어보지 않아 뭐라 더 사족을 붙이긴 어렵지만 그다지 친절한 도시는 아니었던 기억이다.


"도시에서는 누구나 사교적일 수 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p264


참 매력적이며 로맨틱한 표현이 아닌가. 잠시 스치는 와중에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으며 별것 아닌 것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일 수 있다는. 곱씹을수록 따뜻한 햇살의 노천카페에서 낯선 이들과 낯선 언어, 낯선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은 상상할수록 로맨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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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 자신의 성공이 되지 않듯이, 다른 도시의 성공이 우리 도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p322


성공 모델을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베끼듯 들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델이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빗댄 저자의 일침은 비단 도시뿐만 아니라 개인의 입장에서도 성공 사례로 점철된 자기 계발서는 남의 이야기일 뿐 나의 성공 사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나저나 p178의 서울과 평양의 위성 사진은 서로 뒤바뀐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봐도 아래쪽이 더 번화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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