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런 유의, 그러니까 느닷없이 겪어야 하는 청천벽력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에세이는 읽을 때마다 쉽게 공감되고 깊이 빠져든다. 아마도 이야기 자체가 주는 공감이 있겠지만 나 역시 그렇게 벼락같이 벌어진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일 테다.
그리고 살살 거리며 고개를 드는 치기 어린 바람. '내 이야기도 못지않은데'라는 생각이 샘처럼 퐁퐁 솟는다. 하지만 역시 글발은 책을 읽는다고 장착되는 옵션 같은 게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 시작부터 빠져든다. 역시나 필력이 뻑이 간다. 본인이 겪은 그것도 스물여덟에 게다가 결혼을 두 달을 앞둔 상황에 "잘 되셨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상담사를 안 죽인 게 다행이다. 또 여전한 나이만 쳐드셨지 어른으로 영글지 못한 그저 그런 노인들 덕분에 밥 잘 먹고 체기가 들었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의 무게가 상대방이 견뎌야 할 무게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를까. 어쨌거나 그 무지한 노인들 덕분에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작가가 여성 질환인 자궁근종을 발견하면서 여성'적' 차별과 무시를 되새김하며 선명하게 각인하는 일들에 얼마나 크고 작은 상처가 흉터로 남았을까 싶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환자였다." p91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적 나는 억울해 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고통스러운데, 혼자 외로운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나 아픔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의 서러움이란 참기 힘들다는 걸 나는 안다.
이를 악물고 재활 치료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목이 부러지며 부서지는 뼛조각에 신경이 갈기갈기 찢어져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수백 가지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그중 하나가 무슨 짓을 해도 땀이 나지 않는 거였다.
가만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여름, 치료실 안에서 마르고 텁텁해진 입이 불쾌했지만 이를 악물며 재활운동 기구를 옮겨 다니며 재활에 전념했다. 한데 어슬렁거리며 치료실을 돌아다니던 환자가 얼마 하지도 않고 땀을 비 오듯 흘린다. 그걸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뭐해'라는 눈빛을 아니 레이저를 내게 쏘셨다.
결국 "아들! 너무 설렁설렁하는 게 아니야?"라며 핀잔을 하셨다. 그때의 서운함이란. 이를 너무 악물어 흔들리지 않는 치아가 하나도 없는 판에 단지 땀이 안 난다는 이유로 그렇게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참 억울했다. 그 후에 그 환자를 볼 때마다 괜히 미웠다.
작가의 이야기가 그때의 기억을 소환했다. 지금 생각해도 약오르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그렇다.
"적당히 좋은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 나았다." p152
삶의 태도에서 완벽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동반하고 힘겨운 일인지 모르지 않다. 그래서 우연히 찾아온 삶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작가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비과학적이고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는 작가가 말하는 '환경 호르몬'같은 부정적인 말이 자동차 배기통에서 유해 물질을 뿜어내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콩이나 석류 등 자연적으로 지닌 식물성의 어떤 '것'들도 화학적이고 유해 물질 가득한 어떤 '것'에 포함하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한데 알고 보니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무지함이라니.
처음에는 단순하고 우연찮게 발견한 자신의 변화에 대한 소회 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오 신이시여! 저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같은 눈물 콧물 다 뽑아내는 체험담 같은.
한데 변화된 몸에 대처하는 자세라든지 사유하고 어떻게 늙어가야 아름다운지 같은 삶의 다양한 깨달음을 슬픔을 통해서가 아니라 담담하고 가볍게 독자에게 전하며 뜻밖에 발견한 병을 직면하고 그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통제되지 않는 근종으로부터 통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 삶이 주체적으로 변화된 작가의 이야기는 그 어느 자기 계발서 못지않다. 앓았거나 앓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언컨대 이 에세이는 그냥 에세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