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웅웅 거리는 핸드폰 울림에 잠시 망설이다 화면을 밝혔다.
"○○ 님이 라이킷 했습니다."
잠시 멍해졌다. 새벽 1시에 그것도 타인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니…. 궁금했다.
관종 혹은 관음.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거나 타인을 주목하고 싶은(그것이 은밀하든 하지 않는 문제가 아닌) 것은 일반적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보다는 좀 더 자주 서평이나 영화 리뷰를 쓴다. 어쩌다 보니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쓰기 위해 읽고 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어쨌든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이든 누구나 처음에는 저 혼자 좋아서 시작하겠지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 하트를 달고부터는 의식하게 된다. 그것도 무지하게.
뭐 이것도 부지런한 사람들이야 답방이라는 예의로 포장해 거슬러 관심을 기울인다지만 난 천성이 게으른 인간이라 답방을 빙자하든 안 하든 관음이라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한데 관종 기질은 있는지 하트가 자꾸 쌓이면 도대체 누가 자꾸 이러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다 유독 자주 그것도 이리 심야에 하트를 찍는 사람이 궁금해져 방문한다. 그의 공간을.
내 글을 읽는 것인지 그저 의미 없이 하트만 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관심이 생기면 그의 글도 읽게 된다. 간혹 깊이 있고 정갈한 필력을 가진 이라도 만날라치면 기분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형편없는 내 글들이 순간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질투겠지. 누구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읽을 만하고 생각을 나눌만한 글은 그리 쉽게 만나 지지 않는다. 글쓰기 책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쓴다고 읽을만해지지 않는다. 내 글이 그렇겠지만.
그래서 주야장천 쓴다고 더 나이 질까 싶지만 방법을 모르기에 나는 그 짓이라도 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질투의 대상이 되는 날도 있겠지 싶어서.
오늘, 지금 이 새벽에 그런 누군가의 글을 읽고 깊이와 넓이와 따뜻함에 여러 생각을 하면서 결국 질투가 났다.
아무리 에세이라 해도 정신질환이라는 전문적인 범주의 책을 읽었다는 그의 글에서, 관련 분야에 종사자도 아닌 그가 느끼는 감수성이 정작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나보다 낫다는 게 참 당혹스러웠다.
아직 관종보다는 관음이 더 수양해야 할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Skitterphoto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