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사실일까요?

by 암시랑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인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녀석이 디스크라니…


독자 집안도 아닌데 부모님은 그렇게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셨어요.

몸이 불편한 것과 아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딱히 핑계를 찾지 못하시던 부모님은 "넌 몸도 불편하니까. 아들 하나는 있어야 나중에라도 든든하지 않겠냐"라고 하시며 아들, 아니 손자 타령을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셨죠.


게다가 우리 부부는 이미 6살 터울이 생길 딸아이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큰 아이를 안으면서 세상 환한 얼굴로 "첫 딸은 살림 밑천인 게야!"라며 반색하셨죠. 아버지는 한쪽에 서서 포대기에 말려 비썩 마르고 손가락만 길쭉한 아이를 만지지도 못하셨어요. 제가 삼 형제 중 맡이었던 탓에 살림 밑천이라기보다 첫 손주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한동안 아이는 자라면서 예쁨을 독차지했었어요.


그런데 둘째 동생이 결혼과 출산을 했는데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어요. 딸아이의 지위는 첫 손주 타이틀에서 이제 살림 밑천으로 되돌아왔고 우리 부부에게는 점점 '장손'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딸아이로 충분했어요.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대를 이을 조카들이 이미 둘이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뵐 때마다 불러 앉히시고 부모님은 잔소리를 넘어 '장손'의 존재를 빌미로 유산 상속 협박을 하시는 통에 말 그대로 우리 부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꽤 물려받을 유산이 있거나 상속을 탐해서 그런 건 아니랍니다. 무슨 기업가 집안도 아니니.


그저 오죽하면 저러실까 하는 마음과 이미 혼자 놀기에 지친 딸아이도 생각하니 노력이나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또 부모님이 잔소리가 시작되자 딜에 나섰습니다. "노력해 볼 테니 혹여 또 손녀라도 더 이상 손주 타령은 하지 마시라"고 당부에 당부를 드렸죠.


사실 부모님의 말씀대로 몸이 불편한 제 노후도 은근 신경이 쓰이기도 했어요. 아들이 있으면 지금은 아내가 도맡아 해주는 제 세신을 그 아들이 거뜬히 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내도 점점 기력이 떨어지고 있거든요.


어쨌거나 이리저리 용쓴 보람이 있었는지 아내는 임신을 했고 더구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참 어려운 녀석이지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내는 딸 애도 입덧을 하긴 했지만 이 녀석처럼 불가사의한 입덧은 아니었거든요.




녀석을 임신했을 때 우린 제주도에 살았어요. 그토록 꿈꾸던 환상의 섬에서 환상적인 임신이라니. 정말 행복의 섬이었죠. 참, 큰 애의 아토피도 여기서 싹 낳았거든요.


한데 아내는 심한 입덧으로 밥은 고사하고 압력솥에서 새어 나오는 밥 냄새도 못 맡았어요. 먹는 건 없고 토만 해대던 아내는 결국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웠습니다. 퇴근길에 먹을 것을 좀 사다 날랐어요. 하지만 그 맛 좋다는 유명 죽을 사다 줘도 입도 대지 못했어요. 덕분에 나와 딸도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언감생심이었죠.


아내는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입덧이 심하니 링거로 연명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은 문득 먹고 싶은 게 있다고 절 불러 앉혔어요.


"나 보름달 먹고 싶어"

"어? 보름달? 옛날에 먹던 빵 말이야?"

"어 그 빵"

"알았어"


큰 애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 퍼뜩 떠올라 망설임 없이 사 오겠다고 대답을 했어요. 그때 야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거의 도착했는데 회사 근처의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아내가 전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집 앞인데, 내일 사 올게"라며 그냥 집으로 들어 선 후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대답을 안 할 수 없었죠.


그래서 그 야밤에 동네 마트를 다 뒤졌어요. 없다네요. 옆 동네를 지나 제주도에서 애지 간한 마트급은 다 뒤졌지만 아내가 먹고 싶다던 빵은 없네요.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회사 브랜드는 입고되지 않는답니다. 그러면서 유사 빵을 찾아 주네요.


"아내가 원한 빵이 아닌데…"

"맛은 똑같아요."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냄새가 힘들다며 방문을 닫고 혼자 칩거 중인 아내에게 이거 찾으려고 생고생했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면서 빵을 디밀었어요. 혹여라도 눈치챌까 싶어 봉지를 벗겨 알맹이만 건넸죠.


"아이, 이거 아니잖아."

"응? 그거랑 맛은 똑같던데? 제주도는 보름달 안 들어온데."

"아냐 맛이 달라."


아내는 후각과 미각이 갑자기 장금이가 되어 버린 걸까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아내는 장금이가 되네요. 글쎄.


"여보 나 에이스가 먹고 싶어?"

"뭔데?"

"요구르트 중에 에이스라고 있어"

"알았어"


또 마트에 갔어요. 아내는 희한하게 다른 요구르트는 입 만대도 다 토해냈는데 유독 에이스만 별 탈 없이 잘 마시더라고요. 그러니 안 갈 수 없죠. 근데 한 번에 많은 양이 입고되지 않아 발 빠르지 않으면 몇 개 살 수가 없었어요. 몇 번을 허탕 치고 직원에게 사정했어요.


"아내가 입덧이 좀 심해요. 유독 이 요구르트만 빼고 다른 건 다 토해서 그런데 좀 보관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후엔 100개짜리 한 판을 찾아가는 퇴근 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근데 요구르트 값보다 마트 직원에게 건넨 사례비가 더 들었다는 건 함정이지만요.


어쨌거나 이렇게 임신 중에도 엄마와 아빠를 고생 고생시키더니 출산할 때도 녀석은 엄마 아빠 심장을 철렁 이게 만들었어요. 물론 경험 부족한 멍청한 의사 때문이기는 했지만(의료사고로 고소할 뻔했어요.) 녀석은 아바타처럼 시퍼렇게 세상에 나온 데다가 울지도 않았어요. 급하게 CPR(심폐소생)를 해서 울음이 터졌죠. 그리고 엄마 아빠 얼굴은 KTX 스치듯 스쳐 인큐베이터를 타고 초고속으로 소아중환자실로 들어가 버렸어요.


몇 주 동안 소아 중환자실에 있는 녀석을 보지 못했어요. 행여 잘 못 될까 잠도 못 잤죠. 그 후에 면회가 되면서 숨 좀 돌릴만했더니 한쪽 발이 말려 있는 내반족이라는 걸 알았어요. 또 걷지 못할까 걱정이 들더라고요.


인큐베이터 안에서 나오자마자 그 조그만 발에 깁스를 하고 오랫동안 교정을 해야만 했죠. 내반족을 치료하느라 아내는 녀석을 들쳐 없고 1시간이 넘게 병원을 한 달에 한 번씩 깁스를 풀고 발 교정을 받으러 다녀야 했어요. 아내도 힘들었을 테지만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사는 게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되었겠죠?


녀석은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 시기에 받은 스트레스를 지금 우리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제 속을 썩이고 있는 듯해요.


암튼 내반족으로 짧아진 아킬레스건은 발 모양을 틀어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녀석은 달리는 속도와 비례해 넘어지는 횟수가 잦아요.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더 자주 더 세게 넘어지죠. 넘어지면서 무릎, 팔, 심지어 얼굴도 긁히기도 많이 긁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구김 없이 단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는 건 다행이에요.


수술을 해야 할지 말지 성장하면서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2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왔어요. 올해 정기검진은 근전도 검사와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해서 학교도 쉬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 데려다줬지요. 장시간 받아야 하는 검사를 녀석이 잘 견뎌내는지 궁금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어요.


"검사 잘 받았어?"

"응 잘 받았어. 약에 취해서 헤롱 거리네."

"뭐 별다른 말은 없고?"

"디스크가 좀 있다네"

"엥? 무슨 디스크?"

"발 때문에 균형이 안 맞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러네."




분명 녀석은 앙갚음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키득거리며 장난이 심해 아내가 종종 학교에 불려 가기도 하고

축구하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심심치 않게 여기저기 까지고 벗겨지고 찢어지고

얼마 전에는 뇌수막염으로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고

개구짐을 넘어 미친 야생마같이 날뛰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자꾸 심장을 떨어트리는지.

이제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디스크라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게다가 녀석은 아들이라지요.

한숨이 깊게 나오네요. 아주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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