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같은 인생, 찰떡같이 만드는 비법 4

# 해외로 간 남자

by 암시랑

"여보세요? 면접 볼 수 있어요?"


그때 난 워크넷에 이력서를 올리면서 지원 가능 '지역'을 한참 고민했다.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터전 이래 봐야 고작 서울과 성남, 단 두 곳이다.


여행으로도 다른 지역을 넘나든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회과부도에서나 봤지 지역명도 모르는 곳이 수두룩 했다.


1. 서울

2. 경기도

3. 제주도


한참만에 제주도를 골랐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니 말도 안 되게 연락이 올리도 없다.

마침 옆에서 옹알거리는 5살배기 딸과 아내가 비행기가 떠오르는 퍼포먼스를 하며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라며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그냥 그 비행기에 올라타버렸다.

마치 운명처럼 그곳으로 가야 할 것처럼.


그렇게 망설였던 제주도에서 등록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그것도 면접 보러 오라는 게 아니라 원장이 직접 오겠다고 했다.


제주도.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곳.

몇 번의 아쉬움에 침을 꼴깍 삼켰지만 결국 거절을 했다.


하지만 본인도 서울에 일이 있으니 올라 온 김에 면접을 보면 좋겠다고 되려 나를 장시간 설득한다.

귀에 땀이 차기 시작할 때쯤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내심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내가 제갈량도 아니고 무슨 삼고초려 코스프레도 아니고.


"사기꾼일까?"


성남시 모란. 유흥가 밀집 동네, 그 속 한가운데 우리 집이 있다.

술집도 아닌 카페인데도 시끄럽다. 그렇게 시끄러운 카페에서 면접 비슷한 걸 봤다.

면접이라기보다 학원 홍보에 가까웠다.


수강생이 몇 안되지만 조만간 국비교육을 시행을 준비하는데 '급하게' 강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결국 난 그 '급한' 것 때문에 선택된 조건 만남이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가족 여행으로 딱 한 번 가본 여행지일 뿐이지 생계를 위해 일터로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당황했다.

일상에 지친 이들이 찾는 곳을 일상을 지치게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간다면 푸른 파도가 넘실거릴까?


원장은 내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이었다. 살짝 간절한 표정이었을까.

연봉과 이런저런 조건을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귀담아 들리지 않았다.

순간 귀를 쫑긋하게 만든 말이 있었다.

'집을 제공하겠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집? 계속 그 소리만 귀에서 웅웅거렸다.

집이라니. 아내와 '긍정적'으로 상의를 해보겠다고 하고 헤어진 후 발걸음이 바빠졌다.


다 말렸다. 심지어 미친놈이라고도 했다.

부모님도 아내도 친구들도.

이유는 뻔하다.

내가 장애인이라 서다.

몸도 성하지 않는 내가(쭉 읽어봤으면 알겠지만 난 장애인이다. 그것도 중증) 생면부지인 곳으로, 그것도 바다 건너간다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어쩌랴. 난 이미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데.

어쨌든 바다를 건너니 해외가 아닌가.

해외에 살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우겼다.


내가 원체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못한다고 하면 정말 못하는지 기어코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오기와 자만(나는 자신감으로 쓰지만 남들은 이상하게 자만으로 읽는다.)으로 똘똘 뭉쳐져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목이 부러지고 침상에 누워 눈만 깜빡이는 내게 이러셨다.


"자만이 하늘을 찌르더니 벌 받았다"


뭐 친구들이 '목 부러지더니 인간 됐다'라고 해대는 것보다는 낫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말 안 듣고 삐딱한 또라이로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꽤나 모험적으로 본다.

실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보란 듯 망하고 비굴한 백수 시절을 보내는 것보단 어디든 뭐든 할 일이 있는데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한 달만 해보기로 했다. 되든 안 되든 딱 한 달.

장애인이 된 후 어머니나 아내가 늘 있었다.

한 번도 보호자가 없던 적이 없었다.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무작정 나 혼자 한 달만 살아보겠다고 했다.

해보고 도저히 못할 것 같으면 올라오겠다고.


그렇게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제주도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지 않았고 잔뜩 흐리고 부슬부슬 비를 뿌렸다.

택시를 타고 학원 앞에서 내렸다.

10미터만 가면 될 것을 약간 내리막 길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넘어진 것도 아니고 미끄러진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앞으로, 얼굴로 그대로 통나무 쓰러지듯 내리 꽂았다.

아스팔트에 얼굴 반이 갈렸다.

피범벅이 되고 진물이 흘렀다.

창피함에 아픈 줄도 몰랐다.

어쩔 줄 몰라하는데 원장이 들어가다가 나를 발견했다.


근처 약국에서 비상약을 사다가 임시방편으로 처치를 했다.

얼굴 반쪽을 매디 폼으로 도배를 했다.

끈끈이 사이로 진물이 조금씩 새 나왔다.

어절 수 없이 그 몰골로 강의를 시작했다.

뜨악하는 수강생의 얼굴을 모른 채 하고 더욱 열강을 했다.


다친 건 비밀이어야 했다.

아내가 알면 난 당장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을 테니.

어쨌든 한 달 만이라는 기간은 이 핑계로 자연스럽게 두 달로 늘었다.


"생각보다 할만해!"


자신 있는 말투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렸어야 했는데 실수다.

한 달만 더 있어 보겠다는 내 말에 아내가 제주도로 날아왔다.

역시 아내는 귀신이다.

공항으로 마중 나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이럴 줄 알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아직 채 낫지 않은 얼굴은 여전히 진물이 흘렀고 여전히 매디 폼을 붙이고 있었다.


일주일을 정성스럽게 간호하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부모님을 설득해 짐을 싸들고 내려왔다.

그렇게 제주살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험이라는 건. 아는 걸 시도하고 도전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도전과 시도다.

그렇다면 분명 나는 모험을 한다. 절대 도박이 아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그건 내가 알바 아니다.

난 하고 싶으면 그냥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