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내가 너 좋아했는데, 알았니?
같은 과거형의 장난스러운 고백은 참 난감하고 때로는 당황스럽다. 지금 내가 누굴 사귀거나 혹은 결혼을 했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때 고백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상황이 이제야 변한 이유도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 불쑥 고백하는 연유도 납득도 할 수 없을 땐 더 그렇다. 그것도 웃음을 함박 머금은 채로 말이다.
건강했던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건강은 하다. 암을 매달고 있거나 딱히 어디가 아픈 질병이나 질환에 시달리지 않는다. 다만, 보통의 걸음걸이를 할 수 없으니 뛰는 건 더더구나 할 수 없고 그래서 액티브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건 불가능해졌다는 정도. 아, 잘 먹는 만큼 잘 싸지 못하는 일련의 생리 조절도 여간해서 쉽지 않은 정도로 건강이 좀 달라졌다.
현재의 난 자주 전동 휠체어를 타야 하고 때때로 스틱을 짚으며 대부분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보통의 당신들보다 약간 더 불편한 정도다.
하여간 혈기 왕성하고 세상에 도전적이었던 스무 살 무렵, 친구 H와 충청도 서쪽 끝 만리포로 야반도주를 감행했었다. 딱히 사는 게 불만스럽거나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거나 하진 않았다. 왜 그랬는지 기억도 흐려졌지만 - 아마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추억 여행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 바닷바람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만리포에서 천리포로 다시 천리포에서 만리포로 해변을 따라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함께 서성이게 된 동갑내기 P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P와 그의 친구 S는 나와 내 친구 H와 해변에서 소량의 맥주를 나눠 마셨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뭐하는 처자며 사는 곳이 어디고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이 오고 갔을 것이다. 헤어진 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으니.
당시 나는 여자 친구가 있어 단둘이 만났던 기억은 없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난 목이 부러졌다. 덕분에 여자 친구는 등을 돌렸고 난 혼자가 됐다. 슬프진 않았다.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너무 뻔했다. 그렇지만 좀 억울했다.
재활로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외로움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쯤 친구 H를 통해 P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기심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연민이겠지. 피하고 피했다.
그러다 결국 만나게 된 자리에서 P는 놀라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아무렇지 않게 정말 내 장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웃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한데 P는 과거에도 하지 않았던 고백을 했고 나는 완전 허를 찔린 듯 숨이 멎었다. 장난 같기도 하고 진심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을 참 헷갈리게 하는 P가 어쩌면 '지금 고백해도 안전하다'라고 느껴 용감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괜히 부끄러워졌다.
갑작스럽게 장애인이 되고 또 연락도 몇 년이나 끊어져 애초에 모르던 남남 같은 이성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을 겪고 보니 그다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더구나 행복한 건 더더구나 아니어서 그저 건강했던 기억으로 남겨 두어도 될 추억이 새로 다듬어지는 느낌은 별로였다. 감정은 살아있는지라 어쩔 수 없는 위축감 같은 게 있다.
이렇게 변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도의 감정이 아니라 그냥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켜버린 것 같이 화끈거리는 내 감정과는 달리 해맑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는 데는 당황을 넘어선다. 만약 그때 호감이나 그 이상의 감정으로 두근거렸다면 어땠을까.
그때 하지 않았던 일은 이제와 서도 하지 않는 게 옳다. 장애가 그저 갑작스럽게 인생에 끼어들었을 뿐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나일뿐이라서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아닌 거다. 불편하고 위축되어 보인다 하더라도 연민은 구분할 줄 안다. 그래서 P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시간은 몇 년 더 흐르고 P도 나도 가정을 꾸렸다. P에게는 두 딸이, 나는 딸과 아들이 있다. 간간히 친구 H를 통해 소식을 듣던 P와 얼마 전 다시 연락이 닿았다. SNS 덕분이다.
복지관에서 에세이 출판 사업으로 장애인 에세이를 기획해서 <행복추구권>이란 책을 펴냈다. 장애가 소재라 그런지 여간해선 팔리지 않아 SNS를 동원해 판매원을 자처했더니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날아든 "잘 살고 있어?"라는 메신저에 잠시 두근거렸다.
그건 지금 내가 결혼을 하고 애가 둘이라는 거와는 관계없이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에 혈기왕성했던 기억으로 소환되고 있다는 야릇한 기분이 좋다. 장애와 비장애 경계를 왔다리 갔다리 하는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