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소설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테마로 엮은 이 의미심장한 소설들은 과연 어떤 의미의 '주의'였을까 싶다. 성(性)을 가르고 분리하고 해체하는 식의 과격한 페미니즘이 아니라서 오히려 당황했다면 나는 무얼 기대한 걸까. 참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전작 <현남 오빠에게>를 읽지 않았다고 이야기가 뚝뚝 끊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게 아닌 또는 본의 아니게 혹은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음에 '본의'와 '알면서도'라는 감정적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람이 있다면 여성 혹은 남성, 어느 하나의 특정한 성(性)으로 재단하지 않길 바란다.
새벽의 방문자들
끔찍하고 잔혹한 스릴러를 생각했다. 길지 않은 단편. 그런데 읽는 내내 숨이 가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A동 여자가 숨을 참아야 하는 동안 나도 숨을 참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심 렌즈 밖에 붉은 조명 밑에 서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인터폰을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돼!'라고 외쳤다.
영웅담처럼 말할 거리가 없는 남자일수록 남들이 들으면 우습고 형편없는 일들을 대놓고 영웅담처럼 늘어놓는다. 이 단편이 보여주는 지질한 영웅들의 모습이 '너'가 아닌 '나'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룰루와 랄라
"가난에서는 쓴맛이 아니라 짠맛이 난다. 그 소금기를 혀끝에서 느껴본 사람은 부르르 몸서리치게 되고, 인생에 시간과 사랑의 양념을 치는 일에 인색해진다. 우리 사이에는 아이가 없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p51
이 시대 젊은 청춘들의 삶을 이것보다 적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고작 '돈' 때문에 인생의 색깔을 다채롭게 해주는 아이를 포기한다니 말이다. 서글프기도 하지만 하편으로는 이해한다. 그리고 당신의 손가락만큼의 전진을 응원한다. 그리고 룰루도. 대신 바가지와 같은 인간들은 그녀들의 전진만큼을 뺀 나머지만큼 아파했으면 싶다.
베이비 그루피
느리다. 그녀들의 계절은 한 여름만 존재하는 것 같은 무료함과 끈적함이 온통 피를 덥힌다. 그루피던 빠순이던 그게 뭐. 일탈이 어떤 형식이나 정형을 갖진 않는다. 그게 작가든 '나'든 아니면 '초'가 됐든 첫 경험이 참혹함이 아닌 무심함이라면 어쨌거나 상처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와 성인의 경계에서 주도적이지 못할 때 상처는 흔적으로 패인다. 아주 깊이. 다소 느리게만 늘어지는 '나'의 욕망이나 욕정이 아니어서 그리고 P가 그렇게 혼자 착각하는 머저리라서 그나마 덜 답답했다.
예의 바른 악당
"우리가 승리하면, 나도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한참 곱 씹혔다. 보라와 그의 관계에서 지나가 문제인지, 보라와 지나의 관계에서 그가 문제인지 궁금했다. 농밀하거나 내밀한 관계는 읽히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관계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 보라의 심기를 헤아리지 않는 지나의 배려는 남자를 위해서였을까. 지나의 호의를 보라의 피해 의식이 토해내는 것일까. 그저 결론은 '인간적'이라는 개념을 챙겨야 한다 정도로 마무리해도 되는 걸까.
유미의 기본
이 단편은 심쿵 하게 만들었다. 여전한 성소수자에 대한 불편함 혹은 낯섬. 이해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괴리가 있다. 대학원에서 인권 수업을 들으며 요즘 한창 페미니즘에 빠져있는 딸과 '손잡고' 퀴어 축제에도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적선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들만의 세상이 이제는 그들의 세상이 되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자뻑이었다. 여전히 형석과 승우가 스스럼없이 '게이'라고 드러내는 것도, 전문 용어처럼 들리는 그들의 단어가 괴리감을 높였다. 페미니즘과 소수자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유미가 '뻣뻣한 년'이 될 동안 줄기차게 등을 쓸어내렸을 선생과 내 고교 시절의 페미니즘과 소수자였을 김 여사 친구를 떠올리며 함께 내 모습도 찾는다. 나도 남중·남고를 나왔다.
누구세요?
허허. 헛웃음이 나는 건 적당히 그을린 피부에 적당한 근육질 가슴을 기진 옆집 남자를 덮친 지윤의 대담한 행동도 아니고, 재영이 설계한 확실하고 디테일한 미래 인생 설계와는 전혀 언밸런스한 이성관 때문도 아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재영과 성교가 아닌 교미를 5년이나 유지한 지윤 때문이다. 그 냄새를 어떻게 견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