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일락 말락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by 암시랑

엄마 심장이 고장난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위태 위태 수명을 끌어오던 박동기를 결국 교체하기로 했다.


엄마 연세 77세. 수술을 앞둔 엄마는 담담한 척하셨지만 많이 두렵기도 하셨을 것이다. 자신의 심장을 대신하던 녀석을 새 것으로 교체하는 일은 어쩌면 심장이 다시 펄떡거리며 뛴다는 기쁨보다는 다시 뛰지 않을 수 있다는 '만일'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으셨을지도 모른다.


평소에 무심한 아들이지만 휴가를 냈다. 코로나 19로 면회도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같은 병원 안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새벽까지 멍하게 있곤 했다.


예정된 수술 시간을 훨씬 넘기고 나서야 엄마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수술장을 나오셨고, 그 밤을 무사히 넘기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메슥거림과 구토로 퇴원이 미뤄졌다.


기계는 잘 작동하니까 별 문제없으니 퇴원 준비를 하란다. 엄마가 반색하시며 견딜만하니 얼른 퇴원하자고 하신다. 아들과 며느리가 며칠째 출근을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신다는 게 이유였다.


오전 11시 퇴원.


집으로 돌아와 한잠 자고 전화를 드렸다. 엄마 목소리는 이미 초주검이다. 무슨 일이냐는 말에 물 한 모금만 마셔도 구토가 나와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만 있으니 기력이 하나도 없다고.


오후 8시 응급실.


결국 9시간 만에 사달이 났다. 응급실로 다시 들어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돌아왔다. 병명이 잡히지 않으니 입원도 불가하고 퇴원을 하라니 답답함이 고구마 백만 개는 한입에 털어 넣은 것처럼 밀려 올라왔다.


응급실 앞에서 답답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엄마가 물 한 모금을 넘기지 못하고 힘겨워하고 있을 때 밖에서 얼큰하게 취하고 계시던 아버지를 오는 내내 원망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안절부절못한 모습은 내 기억엔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엄마가 더 아팠을 때도 보지 못했는데.


가까이 보아 오던 부부의 모습은 그다지 살갑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평생을 가정적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엄마의 갑작스러운 상태에 갈피를 잡지 못하시고 불안해하신다. 부부는 그런 것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원망으로 평생을 반항기로 살았다. 아버지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잘 섞지 않고, 또 섞더라도 꼭 싸움이 되는 상황이 진절머리 났다. 그래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난 술도 마시지 않았다. 오십 년을 넘게 그리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자꾸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당황스럽게. 요즘처럼 문득문득 아버지가 낯 선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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