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 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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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꾼다느니 불확실한 미래니 하며 새로운 기술 혁명에 대한 복잡한 전망을 쏟아내는 통에 은근 불안했죠. 백세 시대, 아직도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합니다. 은퇴를 앞둔 이 타이밍에 벌어지는 기술혁명이 행복한 일인지 결코 모르겠네요.
딱히 변화에 훌쩍 올라탈 수 없는 입장에서는 불안한 선택보다는 차라리 원치 않아도 직장연장의 꿈을 꿉니다. 그게 공황장애를 부추기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땀이 납니다. 답답합니다. 마음은 바다가 좀 보이고 동네에서는 차나 사람 소리보다 개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조용한 곳에서 풍경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눈 깜짝할 새에 불어 닥칠 것 같았던 새로운 기술혁명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말 그대로 순식간에 꺼져버렸습니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나라들은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노동자는 실직하고 상점들의 폐업이 줄을 잇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왁자지껄 모일 수 없고 마음을 나눌 기회는 점점 미뤄지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2020년 불어 닥친 팬데믹은 그저 우리의 일상만 바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감각은 매서울 정도로 예민해지고 때로는 두렵고 메말라졌습니다.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동료가 확진자가 아닌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라는 소리에도 감정은 요동칩니다. 정말 쉽지 않은 세상이 온 건 분명합니다.
주말 저녁, 복지관 이용 아동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검사를 받았다가 확진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잠결에 날아들었습니다. 아이와 밀접 접촉한 동료는 그 즉시 검사를 받았다고 하고 복지관은 긴급 방역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출근 전 집 근처 선별 진료소에서 의무적으로 검사 시행 후 결과 통보 전까지 재택근무를 시행하라는 내용에 동료의 안부가 걱정됐습니다.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가 길게 늘어 선 줄을 보자니 내심 불안한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검사에 참여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물론 공공선이겠죠? 그런데 따뜻하게 기다리라는 병원의 배려가 느껴지는 온풍기를 외면하고 사람들은 온기가 닿지 않는 실외를 택했습니다. 따뜻한 온기보다 좁은 공간의 두려움은 12월의 한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불신은 일상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동료를 배신하고 불신하는 일로 웃음을 주던 예능은 이제 더 이상 예능이 아님을 실감하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감정을 두려움과 불신으로 단박에 전염시켰습니다.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 통째로 코호트 조치가 내려진 것처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점점 문을 닫는 상점들은 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입을 모으고 마음으로 모으고 함께 안타까워하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고 거침없이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공감과 혐오 사이에서 사회든 사람이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기만 합니다.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굴립니다. 오늘 하루의 불안한 감정이 잔뜩 뒤엉킨 출근길은 그래서 생기를 잃은 지 오래죠. 은퇴 후 더 이상 일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 이제는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은 검사 결과가 제일 두렵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