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우정 길들이기

by 암시랑
Gustavo Fring 님의 사진, 출처 Pexels.jpg Gustavo Fring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복지관 이용 아동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검사를 받았다가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에 복지관이 뒤집어졌다. 복지관은 긴급 방역에 들어갔고 직원들은 출근하다 말고 집 근처 선별 진료소에서 의무적으로 검사 시행 후 결과 통보 전까지 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졌다.


벌써 몇 번짼지, 이젠 그러려니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내심 불안한 기분이 든다. (그때는 아직 초 봄이라 추웠다) 온풍기가 틀어져 있는 대기소는 초조하게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따뜻하게 있으라는 병원의 배려에도 사람들은 온기가 닿지 않는 실외를 택했다.


나는 추우면 온몸의 관절이 뻣뻣해지는 탓에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이제 사람들에게 불신은 일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동료를 배신하고 불신하는 일로 웃음을 주던 예능은 이제 더 이상 예능이 아니라 현실이 돼버린 세상이 와버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감정도 두려움과 불신으로 전염시켰고, 사회적 거리 두기는 거의 사회 전체가 코호트 조치가 내려진 것처럼 압박한다. 점점 문을 닫는 상점들은 늘어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떻게든 권고와 법망을 피해 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사회든 사람이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인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로 불안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한 감정이 뒤엉킨 출근길은 생기를 잃은지 오래다. 사상 초유의 취업난으로 일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 이젠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쓰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인내도 바닥나고 미세먼지가 흩날리더라도 마스크를 벗고 싶어 한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라면서.


대학 동창의 결혼식을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는 직원의 소리에 사회에서 맺어진 관계는 이해타산이 기본이라고 핑계처럼 이유를 대며 마음이 심란하면 안 가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동창과 친구 사이를 생각한다. 우정은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는 우정도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해를 따져 만나게 되는 그런 친구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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