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질한 아빠의 변(辯)
수능을 90여 일 남겨 두고 백신 접종을 하고 "아무렇지 않아"라며 학원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학원 가던 길에 머리가 어질 하고 속이 메슥하다며 다시 집으로 왔다. 한데 쉬겠다던 아이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고 어질 하다는 애였다. 백번 이해해서 그럴 수 있지만 보는 아빠는 속이 터진다.
작년, 재수는 안 된다고 '어디'라도 가라고 완강하던 아빠 앞에 눈물 콧물 쏟아내며 억울해서 한번 더 해보고 싶다던 아이였다. 노오오력을 다짐하던 아이였다. 수능이 다 끝난 지금, 아이는 논술까지 다 합쳐 '어디'도 갈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시험을 이번에도 망쳤다. 본인은 후회하고 아빠는 별빛처럼 실망이 내렸다.
90여 일이나 남은 날에서 고작 2~3일 쉰다고 뭐에 그리 대수냐 할지도 모른다. 아파서 쉰다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할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랴 싶을 수 있다. 한데 부모도 입장이란 게 있으면 안 될까.
새벽같이 일어나 자존심 신발 밑창에 깔고 나이 어린 상사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고 대미지 입어가며 일하는 아빠 입장에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는 "나처럼 살지마"와 동의어다. 부모에서 부모로 구전 동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 그럴만해서다. 그저 "라떼는 말이야"로 꼰대 잔소리로 흘릴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부모의 말씀을 거역한 탓에 무던히도 고단한 삶을 사는 아빠의 현실적 충고요, 앞으로 펼쳐질 인생 설계 청사진 정도는 된다. 공부에 때는 없겠지만 해야 할 시기는 분명히 있다. 국가가 정해 놓은 정규 코스 그것도 지돈 한 푼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딱 그 시기. 알랑가 모르지만 이 시기를 벗어나 성인의 반열에 발가락 아니 발톱 정도만이라도 들이미는 순간 모든 건 지 돈 내고해야 한다.
인생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들 한다. 물론 맞다. 서울대 나와도 노는 사람 많다. 분명 말하지만 이건 폄하나 서울대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다. 인서울도 못해 본 내가 서울대를 어찌 까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들 노는 차원이 다르다. 소위 아무 곳이나 취업해서 그동안 힘들게 두뇌 노동해 온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겠는가.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말만 들어도 알아주는 그런 곳에서 같은 시간 일을 해도 두세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으려다 그랬겠지. 혹은 역량을 펼쳐 보일만한 곳을 찾다 찾다 타이밍을 놓친 걸 수도 있고. 어쨌든 자발적 백수에 가깝다.
뭔 일을 하거나 어디서 일하거나 직장이 주는 정신과 육체적 스트레스는 하드보일 급이라는 거 공감한다. 한데 똑같이 휴가라고 쓰고 누구는 1박 2일 제주도에 감사하고, 누구는 2주 스페인으로 떠나도 휴가비가 적다고 지랄한다.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 앞에서 말이다. 솔직히 '때릴까?' 잠시 고민했다.
자본주의 동네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불공정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지 이미 뼈아프게 겪어본 부모의 심정으로 이왕이면 자신감에 자존감 높은 사회인으로 모두 '예스'라고 눈치 볼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기본으로 장착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근데 살아보니 내가 인정받지 못할 때 '노'라고 외치는 건 '네'라고 외치는 것보다 더 비참한 현실이 기다릴 뿐이라 걸 이미 깨달은 바 대놓고 네 인생은 네 거고 너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진정한 인생이야'라고 할 수 있는 울트라 심장은 탑재하지 못했다.
주변을 보면 내 인생은 내거고 나하고 싶은 인생을 살아볼 게 한 사람들 대부분 부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누웠더라. 이제 환갑이 넘어 노부부 단출한 인생, 쪼글 해져 감각도 없는 손 좀 잡고 살아보나 했더니 자식 걱정 하루하루 한숨으로 이불 삼는 모습에 제발 부모 마음도 알아줬으면 싶다.
항간에 '뭘 해도 안 되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라는 이야기는 모르는 바 아니다. 정말 살기 힘들고 뭐라도 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거 너무 잘 안다. 그렇다고 '지 맘대로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라고 앙탈 부리면 부모 자식은 그저 우연일 뿐 아니겠는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작 전공 시험에서 선배의 족보를 얻어 보겠다고 술 사고 아양 떨며 애쓰면서 하물며 긴 인생을 사는데 돈 주고도 못 사는 족보를 공짜로 주겠다는 부모 말은 왜 그리 하찮게 여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김우석 작가는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에서 '지침'에 대해 말하는데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아이들과 내가 알아드리지 못한 내 부모의 지쳐가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던지. 내 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늦지 않게 알았으면 싶다.
성실과 노력이 결과를 얻지 못해도 충분하다는 건 이성으론 이해하는데, 결과를 만들지 못해 어쩔 줄 모르며 '한 달만 더 있었으면' 하고 후회를 하는 아이를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그저 다 괜찮다고 영혼 가출한 멘트를 하고 있는 아빠여서 지질한 것도 같아서. 그럼에도 아이가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아빠 손을 놓지 않았으면 싶다.
사진 출처: Andrew Neel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