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연대기

by 암시랑

엄마 손은 등과 바닥이 똑같다. 두껍고 단단하고 깊게 팬 주름으로 뒤덮여 있다. 짧고 뭉툭한 손톱은 얼마나 두꺼운지 깎아 놓으면 손톱인지 발톱인지 분간도 안 된다. 그중 검지는 몇 번이나 뽑히고 다쳤는지 갈라지고 색도 검붉다. 쓸데없는 가시네가 학교는 무슨! 이라던 외할아버지의 서슬 퍼런 노여움은 국민학교를 끝으로 머슴처럼 일하게 만들었다. 오빠나 남동생들과 다르게, 밥하고 꼴 베며 물 긷는 일을 하는. 국민학교를 다닌 것도 다행이지라며 유년을 회상하는 엄마의 한탄이 서린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들었다. 집안일이 싫었던 엄마는 공장에서 재봉틀을 쉴 새 없이 돌렸다. 집안일에서 집안에 보탬이 되는 일로 여전히 손을 혹사시켰다. 엄마 손에 예쁜 매니큐어는 사치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났다. 맞선이었다. 외할아버지 성화에 억지로 나간 자리에서 엄마는 줄곧 손을 가리기 급급해 아버지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말은 큰아버지와 신설동에서 이름난 가구점을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냥 공장 일꾼 정도의 대접을 받는 정도였다. 그래서 새댁인 엄마는 톱밥을 긁어모아 수십의 공장 식구들 밥을 짓고 불을 때는 일을 마다할 수 없었다.


변변한 신혼집을 얻을 형편이 안 돼서 수도조차 없는 옥수동 산꼭대기 판잣집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나마 물을 쓸 수 있던 공동 우물이 겨울에는 얼어붙어 엄마는 한강까지 물지게를 매고 내려가 얼음을 깨야했다. 그렇게 엄마 손은 고울새 없이 두꺼워지기만 했다.


대학 신입생 티를 막 벗었을 무렵, 나는 사고로 목이 부러졌다. 순식간에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9시간 만에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에 눈을 뜰 수 없어 현실인지 환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웠다. 발바닥을 문지르는 느낌이 있었지만 시선은 천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엄마가 맨손으로 연신 발바닥을 주무르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이러고 계셨을까? 이렇다 할 감각을 느낄 수 없지만 엄마가 힘주어 누르면 발가락이 꼼지락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움직인다며 눈물바람에 “네가 한 거야?” 라고 물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녹음기처럼 묻다가 이내 울음은 통곡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뭉툭한 손톱을 세워 온힘으로 누르던 발바닥이 피가 흥건했다. 아파하지 않고 평온한 내 얼굴을 보고 엄마는 절망했다. 지켜보던 의사는 가느다랗던 엄마의 희망을 매정하게 잘라냈다. "여기서 죽나 집에서 죽나 어차피 같으니 데려가시죠."라고. 순간 두꺼운 엄마 손은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어떻게든 살려내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중환자실에 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내 몸은, 엄마의 두꺼운 손과는 다르게 말라비틀어져 갔다. 뼈마디가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긴 손가락이 기이한 모습이 됐다. 움직임이 없어진 몸은 의지와는 다르게 온 힘을 다해 뻗쳤다. 그렇게 뻗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손은 시간이 지나면서 안으로 말려 펴지지 않고 굳어갔다. 얇고 가늘어진 기이한 내 손을 엄마는 두꺼운 손으로 펴고 문지르고 온기를 담느라 여념이 없다. 신이 사람을 빚었다면 엄마는 나를 빚었다. 둘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살아났다.


33년이 지난 오늘, 엄마 손의 고단함은 여전한데 계절이 지날수록 두껍던 손이 내 손만큼 바싹 말라간다. 그 손을 잡은 내 마음이 꼭 그만큼 타들어 바스락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