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 옥수동 산 5번지. 쪽방촌처럼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온기를 내던 곳. 사랑과 야망을 불태우던 달동네, 드라마 <서울의 달> 배경이었던 곳. 물난리가 났어도 끄떡없던 가난한 사람들의 고향이 돼주었던 달동네. 지금은 지명에서 사라진 그곳이 내 고향이다. 그 시절엔 부자들은 교통 편한 아랫동네에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끝도 없이 위로, 더 위로 올라가서 살았다. 지금이야 부자가 경치 좋은 윗동네에 살지만. 어둠을 밟고 일터로 나가고 또다시 어둠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선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은 그저 사치다.
옆집 사는 호빵이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볼을 한 채 얼굴을 쑥 내밀었다. 호영이는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녀석의 볼이 유난히 빵빵해서 내가 붙인 별명이다. 벽을 베니어합판으로 막아 놓아서 녀석이 방귀라도 뀌면 내가 뀐 것처럼 소리가 날 정도니 옆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집이다.
“뭐 하냐?”
“왜?”
“오늘 보건소 누나 뜬댄다.”
“진짜? 잠시만.”
달동네는 여름이면 가장 먼저 뜨거운 열기를 받는 곳이라 장판에서 누웠다 일어날라치면 등짝에서 쩌억 소리가 날 정도로 더위에 무방비인 곳이다. 선풍기라도 돌리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판자촌 어디에도 그런 집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튼 호영이 말에 쩌억 소리를 내며 잽싸게 일어나 반바지와 난닝구를 입었다. 그리고 바람이 일정도로 녀석과 대문을 박차고 내달렸다.
“아이씨, 오늘은 어디로 숨지?”
연중행사로 보건소 직원이 가파른 고갯길을 숨을 헐떡이고 올라와 아이들에게 회충약과 불주사를 놔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눈치 없는 녀석들은 엄마에게 잡혀 눈물 콧물 바람 하며 어깨를 내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삽시간에 사라졌지만 엄마들은 귀신같이 아이들을 찾아내 코나 귀 그도 아니면 머리채를 잡아끌고 기어이 주사를 맞혔다. 나는 길모퉁이 끝에 있는 양옥 집 대문 옆에 있던 내 몸보다 더 큰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속으로 숨었다. 보건소 직원이 철수하고 나서야 집에 가면 불주사보다 더 아픈 엄마의 손이 등짝이며 엉덩이며 사정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날은 나와 호영이의 비명이 골목을 한참 울리곤 했다.
또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똥개가 먹어대는 걸 찍어 낸 채변봉투의 참사는 친절한 보건소 누나가 웃음 가득 담아 쥐어준 한주먹 가득한 회충약을 먹어야 했다. 그날 밤, 엄마는 어두운 표정으로 원기소를 사와 걱정 가득 담아 한주먹 쥐어 주셨다.
그때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집에 있어도 코가 얼어붙을 정도로 외풍이 세서 밖에 있는 거랑 다르지 않았다. 한강이 꽁꽁 얼어붙으면 아이들은 볼이 부르터질 때까지 썰매 타고 얼음낚시하며 놀았다. 그렇게 유년 속 고향은 옥수동에서 약수동, 금호동으로 쭉 이어진 매봉산 산자락과 한강을 뛰놀던 곳이다.
하루 벌어 살던 사람들이 모인 옥수동 산 5번지는 일대가 산보다 더 높이 솟은 아파들로 채워지면서 20여 년 전 지명에서 사라졌다. 내 고향, 내가 나고 자란 터는 지금은 래미안 옥수 리버젠으로 불린다. 도시 사람에겐 고향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향수는 희미해지고, 대신 수십억의 화폐 단위로 매겨지는 게 익숙해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은 고향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은퇴하면 고향에 갈까 해라는 친구의 말이 사무치게 부럽다. 어쩌면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사람에게 고향이란 단어는 판타지가 아닐까. 또랑 치고 가재 잡는 시골과 코 빨아먹고 흙 파먹던 도시의 유년은 느껴지는 감각이 같을 리 없지 않은가. 시골 아이들이 또랑 치고 가재 잡고 산과 들녘, 바다를 바람처럼 뛰어다닐 때, 도시 아이들은 땅따먹기, 자치기, 술래잡기, 망까기, 오징어, 연탄재싸움, 칼싸움 등을 하며 좁은 골목에 갇혀 자랐다.
어느덧 쉰을 훌쩍 넘긴 시간에 십수 년 전에 사라진 고향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도시에서 도시로 떠도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녹색의 푸르름이 없던 시간은 새롭게 향촌으로 스며드는 일 또한 두렵게 만든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고향은 판타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일이 점점 팍팍해지는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는 일을 꿈꾼다. 내 고향은 어디 있을까.
주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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