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네 식구 모두 안경을 쓴다. 아내는 언제부터 썼는지 모르지만 처음 만날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뽀뽀 할 때 자꾸 부딪히는 통에 리듬이 깨지곤 했다. 참 불편했다. 딸아이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썼는데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었나, 딱히 기억이 없으니 그냥 나빠졌나 보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썼다. 그때 딸아이 스마트폰을 물려받았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시력이 아주 나빠 압축렌즈로 세상을 보는데 매사 제 성질대로 띄엄띄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를 자주 화나게 만든다.
나는 근래 충격적인 사건이 있어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장거리 운전 중에 어둑해지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진다. 터널이라도 들어가면 순간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어져 무섭다. 그 후에 야간 운전에는 꼭 안경을 쓰는데 아직은 습관이 안 돼서 그런지 나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닌데 아내와 아이들은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각고의 노력 끝에 잠시 안경을 쓰긴 했었다. 학기 초에 눈이 나빠졌다는 둥, 칠판이 안 보인다는 둥 심지어 이러다 시험을 망칠 거라는 협박까지 일삼으며 엄마를 귀찮게 했다. 기어이 안경을 쓰고 말겠다는 집념은 결국 엄마와 안과 의사를 마주하게 했다. 의사는 안경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얄밉던지. 엄마는 눈을 흘기며 한심하다는 듯,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며 면박을 한 바가지 쏟았다. 아들 시력이 좋다면 좋아할 일이지 그렇다고 한심한 놈팡이 취급할 것까지 있나. 속이 쓰렸다. 두고 보라지!를 외치며 안경을 쓰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이야 핸드폰에 몰두하는 탓에 아이들 시력이 망가진다지만 당시 안경잡이는, 그것도 뿔테는 우등생의 상징처럼 보였다. 연합고사를 치러야 중ㆍ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던 때라 공부 좀 한다 싶으면 대부분 안경을 썼다. 반면 공부와 담쌓고 사는 나는 시력이 육백만 불 사나이에 버금갈 정도로 좋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안경이 쓰고 싶었는데, 시력이 좋아도 너무 좋다는 의사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손가락으로 눈을 찌를 순 없으니 공부에 매달렸다.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엄마는 찰진 욕을 쏟아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듣는 엄마 욕은 귀에 착착 감긴다. 어쨌든 욕이란 욕을 배불리 먹어도 포기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렸다. 낮에는 펑펑 놀다가 해가 떨어질 때쯤 책을 펼쳐 들었다. 어두워도 불도 켜지 않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 만화책에 빠졌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TV 브라운관에 얼굴을 껌딱지처럼 붙여 놓았다. 엄마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 지르고 등짝을 후려 갈겨도 며칠이고 계속했다. 그때 나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음핫핫. 내 전략은 딱 들어맞았다. 한 달도 안 돼 시력은 0.8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안경점에서 나오는 나는 최신형 안경을 쓰고 있었다. 뿔테는 아니지만 얇고 둥그스럼한 안경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내 신난 발걸음에 엄마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안경을 쓰고 다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틈만 나면 축구며 짬뽕에다 심심하면 여자애들이 노는 고무줄을 끊고 도망 다니며 운동장을 누비는 데 안경은 너무 불편했다. 무심결에 눈을 비비려다 안경에 콧등이 까지고, 따신밥 좀 먹으려다 순식간에 눈이 흐릿해진다. 특히 겨울에 안경을 쓰고 버스 타는 건 창피하기까지 했다. 겨울왕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멋 좀 내려다 한 트럭 가득 불편함이 쌓였다. 안경은 집 안 어디다 둔지도 모르게 굴러다녔다. 희한한 일은 안경을 쓰지 않았더니 떨어졌던 시력이 다시 육백만 불 사나이로 돌아왔다. 그걸 눈치 챈 엄마는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며 아주 크게 혀를 찼다. 엄마 유행어를 내가 만든 건가. 그 후론 안경을 쓰지 않고 몇십 년 지내다 노안이라는 의사 말에 다시 안경을 쓴다. 전쟁 같은 일터에서 모니터를 적군 보듯 하루 종일 노려보다 보니 시력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한 트럭 가득 불편함은 운전할 때도 안경을 멀리하게 했는데 이러다 신을 생각보다 일찍 영접하겠다 싶어 간헐적으로 쓰고 다닌다.
운전 중에 어둑해지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진다. 터널이라도 들어가면 순식간에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어져서 무섭다. 지금은 야간 운전에는 꼭 안경을 쓰는데 아직은 습관이 안 돼서 아직 반 트럭 정도는 불편하다. 폼 좀 잡아보겠다고 엄마 속을 있는 데로 긁어 놓고 썼던 안경이 지금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된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은갈색의 안경테는 폼 난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나 같지 않고 모범생 같아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어 기분 좋다. 아니다, 기분 좋을 일이 아닌가.
주제: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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