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에세이]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by 암시랑


머리털 나고, 그러니까 서른하고도 완전 후반인 나이에 낚시라는 걸 처음 해봤었다. 그것도 대나무에 낚싯줄과 바늘만 달려있는 말 그대로 그냥 작대기라고 해도 믿을만한 대나무 낚싯대였다. 그런데 이게 신통하게도 내게 손맛을 알려줄 줄이야.


각재기(전갱이를 제주도에서 이리 부른다.)라는 녀석이었는데 이 녀석을 석쇠에 구우면 의외의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한데 문제는 내가 잡는 재미만 알았지 펄떡펄떡 뛰는 녀석을 바늘과 분리를 못했다. 그랬다. 난 생선의 촉감이 너무 싫다.


여하튼 재미 들인 낚시를 잡히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녀석을 놔줘도 "나는 당신이 그리워요"라는 것 마냥 다시 잡혀주고 심지어 여섯 살 딸아이가 미끼도 없이 늘어 트린 낚싯바늘에 올라 오기도 했다. 도대체 얘네 뭐냐!


그때 알았다. 어류 대가리가 조류 대가리보다 한수 위라는 것을. 녀석의 이름은 개복치가 아닌 각재기였다. 어쨌거나 멸종 위기 종인 개복치를 앞세워 독자의 공감에 주력하는 이 책은 작가의 글발이 남다를 것이라는 자화자찬에 비해 그다지 남다르진 않지만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교훈 그리고 자기 비교를 덤으로 해볼 수 있도록 독자에게 '독자님, 너 님은 어떠세요?'라며 자꾸 묻는 게 은근 유쾌하다. 근데 코알라도 멸종 위기인가?


'행복 비스름한 것들은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 따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유쾌하고 명쾌한 표현에 우울해진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인지. 게다가 큰 것도 아니고 코딱지만큼 작고 병아리 오줌만큼 소소한 것조차 그림자도 구경하기 어렵다.


이 책은 일종의 소심쟁이들을 위한 레퀴엠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그들을 개복치라 부른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이런 개복치들이 두려움과 외로움에 지쳐 방에 틀어박혀야 안전하다고 설파하는 게 아니라 언젠간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일상을 통해 많은 공감을 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을 제가 알 리가 없지 않나요?"라며 어떤 개복치가 자신에게 털어놓았던 말에 대한 소심한 마음의 소리에 빵 터져버렸다. 그렇지 알 리가 없지. 알면 안 되기도 하고. "온종일 타인과 부대꼈던 그날 하루는 마음 깊은 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라는 마음 급하게 어디에라도 적어놓아야 할 만큼 멋들어진 문장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개복치라니. 참 마음에 든다.


읽다가 힘이 쭉 빠졌다. 결국 나는 글쓰기를 잘 할 수 없는 성향을 타고난 거라는 걸 알아 버렸다. 나는 학창시절 외향적이어서 늘 운동에 미쳐있거나 친구들과 몰려다니느라 교과서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책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만화책도 좀 나이 들어 빠졌었다.


그러다 보니 저자가 말하는 조용히 방에 은둔하며 활자를 벗 삼았던 소심한 개복치과는 아니라서 글을 못쓰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지라 괜히 부아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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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40~50대는 막다른 길에 몰리는 일이 잦다. 퇴직, 병환, 이혼 등 삶 곳곳에 암초가 놓여 있으며, 나락으로 떨어지면 재기할 길이 거의 없다. 중년의 좌절감은 그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으나 너무나도 흔하기에 이들의 죽음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p116


이런 제길, '너무나도 흔하다니' 호날두(얘는 요즘 재섭으니 뺄까?) 내지는 메시가 내지른 축구공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가슴이 뻐근하다. 내 이야기이지만 그나마 버텨볼 마음이 드는 건 어쩌다 보니 십 년을 살아냈으니 이제 십 년만 지나면 자살률이 제일 낮은 육십 대라는 거다. 근데 쓰고 나니 별로 기쁘지 않은 건 함정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 '행복'이란,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모르지만, 최소한 행복하지 않게 되는 일을 피하는 것"이란 작가의 말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주야장천 일만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하는 일일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을 땐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중요한 일도 있을 수 있겠지안 최소한 두 개 중 하나는 오늘이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하여 나는 행복하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그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마음가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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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책을 기분 좋게 덮은 후 드는 질문 하나. "근데 작가님, 늘 3~4 정도의 화가 나있는 아내와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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