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같은 인생, 찰떡같이 만드는 비법 8

겁도 없이 해대는 인생 개똥 철학, 한 자락

by 암시랑

그렇게 푸른 밤만 있을 것 같던 제주도를 떠나 안산이라는 도시로 왔다. 2008년이었다. 공단 지대에서 조금 떨어진 광덕산 자락 끝 월피동.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가깝고 교통편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지만 20년이 다된 낡고 허름한 아파트였다.


허름하다고는 하나 아파트 세 동이 'ㄷ' 자 형태를 이루고 있어 안락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사람들도 그랬다. 아내는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웃들을 사귀었다. 사실 아내는 그렇게 사교적인 편은 아니다.


지하 주차장이 없어 모든 차는 지상에 이중, 삼중의 주차를 해야 했다. 출근할 때는 여지없이 가로막고 있는 차들을 밀쳐내야 하는데 내 몸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나는 초등학생, 어르신, 나보다 더 힘이 없어 보이는 깡 마른 아가씨까지 번번이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날엔 딸아이 등원 준비로 바쁜 아내를 호출해야 했다.


봄.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됐다. 집도 직장도 만나는 사람도. 집 바로 앞에는 안산천이 흐른다. 계절마다 천 주변으로 넓게 꽃을 틔웠다. 특히 튤립 축제는 아내와 딸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차로 조금만 나가면 노적봉 인공 폭포가 있는 공원이 있다.


주말이면 넓은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이른 아침, 한쪽은 아내의 손, 다른 손은 지팡이를 짚고 공원을 걷는다. 산책이라기보다 재활에 가깝지만 아내와 여유로웠던 아침은 행복했다. 가끔 잘난 척한다고 혼자 걷다가 자빠져 아내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그때의 훈장이 턱과 이마에 선명하게 남았다.


힘들게 걷다가 폭포 밑에 서면 폭포에서 부서져 흩날리는 물보라가 기분 좋게 얼굴에 묻었다. 그 상쾌함이란 안 맞아본 사람은 모른다. 폭포와 가까운 난간 사이를 달리며 흩날리는 물보라를 맞으며 행복해하는 딸아이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장'이 열렸다. 다양한 물건과 먹거리들이 펼쳐졌고, 아내는 그중 '순대볶음'을 자주 사 왔다. 적당히(이건 순전히 아내의 주관적 견해, 아내는 매운 걸 잘 먹지만 난 오랜 병원 생활로 매운맛을 견디기 힘들다.) 매운 순대볶음은 가성비가 좋았다.


매워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밥 보다 물을 더 많이 먹을지언정 함께 세 식구 순대볶음을 먹던 일들처럼 그렇게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시작되었다.


새로 강의하게 될 곳은 직업학교였다. 말 그대로 제주도의 조그만 학원과는 수준이 다른, 한 강의실에 30명의 학생이 있고, 이런 강의실이 10개가 넘었다. 꽤 규모가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각 담당 교실에서 강의와 휴식을 알아서 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교무실이 따로 있어 강의가 끝나면 선생님들만의 공간이 따로 있어 말 그대로 학교처럼 느껴졌다. 한데 문제는 3년 정도의 강의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제주도의 조그만 학원에서 학교로 스케일이 엄청 커져서 그런지 바짝 얼었다. 아니 기가 죽은 걸지도 몰랐다.


학교장을 비롯한 교무부장, 여러 강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강(시범 강의) 겸 면접 자리가 마련됐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으로 10분 간 강의를 하고 압박 면접 같은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보다는 핫한 과목이 어필하기 좋겠다는 잔머리에 제일 못하고 자신 없던 액션스크립트를 선택했다.


심장이 가슴 밖에서 뛸 정도로 긴장이 됐지만 시강은 그럭저럭 준비한 만큼 뻔뻔하게 해치웠다. 한데 면접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쏟아져 말 그대로 버벅댔다. 나쁜 놈들 자기들도 강사면서 적당히 넘어가지 학교장 앞이라고 앞다투어 잘난 척들을 하고 지랄이라니.


암튼 땀도 안나는 내가 전신 사우나를 한 것 같이 푹 젖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면접은 다행히 통과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먹여 살린다" 따위의 거들먹거리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으니 그게 너무 좋았다.




강의 첫날. 강의실에 들어섰다. 웅성대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아이들이나 성인들이나 교실에선 이렇게 떠들어야 제맛이다. 담임제로 운영되는 직업학교는 한 교실에 30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들의 시선이 호기심을 올라타고 날아와 내 얼굴에 박힌다.


지팡이를 짚고 걸음도 이상하게 걷는 사람이 교실, 뒤도 아니고 앞으로 그것도 교탁 앞에 떡 하고 서니 이상하게 생각 안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잠시 뜸을 들이고 숨을 고른다. 한쪽은 호기심 가득 찬 시선과 다른 한쪽은 이 어색하고 민망한 시선이 교실 공기를 무겁게 내려 누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몰라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말문을 열었다.


"웬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지? 약 팔러 왔나?라고 생각하죠?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아, 내가 걸음은 좀 이상하긴 하죠? 암튼 뭐 팔러 온 사람은 아니고요. 오늘부터 여러분하고 함께 웹디자인을 공부해 나갈 강사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 까불다가 목이 부러져 이렇게 됐네요. 근데 다행인 건 몸만 그렇지 머리는 멀쩡하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근데 보시다시피 걷는 게 만만치 않아서 순회공연은 많이 못 다녀요."


학생들의 표정을 살필 겨를도 없이 속사포처럼 단숨에 내 소개를 해치워 버렸다. 잠시 침묵. 다시 흔들리는 동공. 어지럽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강사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새로운 강의를 맞게 되는 늘 이런 인사말로 시작했다.


사실 강사의 강의가 장애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장애인 강사에 대한 못 미더움은 강사의 역량보다도 강사의 몸을 더 집중하는데서 오는 편견일 뿐이다. 이렇게 내 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분위기는 좋아진다.


재미있었는지 잘했는지는 잘 몰겠다. 하지만 강의는 정말 미친 듯이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SNS 친구를 맺거나 가끔 연락을 해오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이 만들어준 닉네임이 '두목'이다.


사실 직업학교는 단순하게 취업을 위한 교육만 하는 게 아니고 학생들의 취업을 함께 고민해준다. 수험생을 진학 상담해 주는 일선 학교 선생님들처럼 나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있다고나 할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주고 상담도 해준다. 취업은 그때나 지금이나 막막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IMF 이후 청년들에게는 언제나 헬조선이 아니던가. 한 학생은 서른 후반에 실직을 하고 재취업을 위해 교육을 받았다. 수료한 이후 어림잡아 100통은 넘는 이력서를 업체에 보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취업이 쉽지 않았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도 발 벗고 나섰다. 10통, 20통, 50통이 넘어서자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알아봐야겠어요"라며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고 다독였다. 그리고 수료를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결국 인터넷 쇼핑몰 취업에 성공해 실장이라는 직함까지 올랐다.


그리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창 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황하며 보내고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막막했다고 한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둘 중 하나는 취업이 안 되는 판에 오죽했을까 싶다.


그렇게 무엇인가 이루어 보겠다고 직업학교에 들어와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알려 왔다.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멱살을 잡을 순 없으니 그냥 잡아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낮에는 편의점 알바, 저녁에는 치킨 배달로 생활비를 벌며 원룸에서 누나와 둘이서 생활하는데 누나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돼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받는 지원금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고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답답한 상황은 이해가 됐지만, 조금 더 고생해서 수료하고 취업하면 생활도 안정될 거라고 설득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고 불확실한 미래라는 걸 그도 알기에 설득을 하면서도 답답했다. 하지만 학생은 수료하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당장 생활이 더 급하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대 초반. 당장 생활을 위해 치킨 배달을 하겠다는 현실적 고민 앞에, 고작 취업하고 쌓아나갈 경력을 들먹이며 불확실한 미래로 마음을 돌려세우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알지만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았다. 그곳에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처지가 비슷하게 어렵고 힘들고 그랬던 터에.


"치킨 배달 3년을 한다고 해서 경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배달 잘한다고 오토바이를 사주는 것도 아니지 않냐. 하지만 수료 후에 취업을 하고 3년 정도 지나면 경력도 쌓이고 팀장도 되고 월급도 오른다. 그러면 네 미래가 달라진다. 치킨 배달을 하는 것보다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도 더 안정되지 않겠느냐."라고 다그쳤다.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많이 주는 치킨 배달이 나아요.”


하지만 그는 이 말을 끝으로 학교를 포기했다.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연락은 끊겼지만 열심히 살려 애썼던 만큼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학생 중에는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예전에 수백만 원을 받고 일을 했기 때문에 취업하면 그때와 비슷하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없는 사람 말이다. 그전에 하던 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하면서 나이와 과거의 연봉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배워도 써먹을 수 없는 교육이라고 치부하며 포기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나 역시 애니메이션, 디자인 강사를 거치며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받는 임금이 제일 적다. 그럼에도 이 일을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속이 터져서다. 사회복지를 하는 데 있어 잘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현실적 제도나 정치적 관념에 사로잡힌 이들과 이견이 생길 때 논리가 부족하면 속이 터진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 가짐과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쉽게 사용하는 물건도 만들어지는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들 역시 쉽게 열린 것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태풍의 세찬 비바람을 맞고 이겨낸 것들일 것이다. 지식 역시 책 몇 권을 읽는다고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 수많은 시간 읽고 쓰고 정리하고 사색하고야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꿈을 찾는 것일까?


자기 계발서들을 읽어보면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음을 안다. 상황 상, 여건 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할 수 있음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할 수 없어 좌절하는 사람들은 바닷가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은 그리 쉽지 않은 선택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하고 싶다는 이상만 보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혹은 하려는 일을 5년 후, 길게는 10년 후를 생각해 봤을 때 나의 위치나 비전이 확실히 보이는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월급이 적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적은 월급이 하늘 모르고 치솟는 집세와 물가에도 상관없을까? 뜬금없이 불꽃 튀는 이성이 나타나 결혼을 해야 한다면? 아이가 생긴다면?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많이 받아야 더 좋은 거다.


할 수 있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는 건 이미 경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경력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사람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다면 어떨까? 찾은 다른 일은 적성에 무조건 맞을까? 그전에는 얼마를 벌었는데 그보다 더 못 번다고 생각하면 과연 이직은 잘한 것일까?


소확행이나 워라벨이 중요한 시대임은 잘 알지만 현재에만 집중하다 보면 가뜩이나 불확실한 시대 더욱 불안감을 키우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든다. 현재를 잘 준비해서 좀 더 튼튼한 미래를 만드는 것 역시 필요한 시대다. 좋아하는 일을 꿈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멀리 내다보는 미래 계획이 옳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계획을 세우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분명 과거나 지금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감히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전 07화개떡 같은 인생, 찰떡같이 만드는 비법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