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나는 글쓰기가 업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에 일상이나 칼럼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 쓰는 양과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이왕이면 ‘잘’쓰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을 올리기 전, 문장을 다듬으면서 어떻게 하면 잘 쓴 글이 되는지 나름 고민하다가 교정교열에 관심이 많아졌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으니 알고리즘을 타고 희끗한 단발머리 저자의 강연이 떴고, 영상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저자의 책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저자 김정선은 타인의 문장에서 ‘왜 이렇게 썼을까’를 생각하고, 다시 쓰는 게 일이자 유일한 취미라고 한다. 27년 넘게 편집자와 교정교열가로 남의 글을 다듬다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비롯 <동사의 맛>, <소설의 첫 문장>,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을 썼고, 강연을 다닌다고 한다.
"끝으로, 문장을 다듬기 위해 당신이 쓴 문장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시간이 온전히 당신만의 시간이기를 바란다." 11쪽_머리말: 문장을 다듬는 시간
나는 요즘 일을 하지 않는 직장에 다닌다. 일이 없고 시간은 많아 공모전이나 블로그 같은, 이곳저곳에 남발하다시피 글을 쓰고 있는데 살짝 걱정스럽다. 쓴 글을 꼼꼼히 읽고 수정을 잘하려다 보면 거의 다시 쓰는 수준이 되는 통에 되도록 간간이 읽고 다듬다 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선 ‘대충 썼다’라고 느낄까 봐 걱정이 된달까.
사실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겐 쓴 글을 다듬는 일이 더 고역이다. 어쩐지 다시 읽자면 도통 잘 읽히지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을 그의 문장이 꼬집는 듯했다.
"감기 기운이 마치 멱살을 잡듯 몸과 마음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기세라, 하는 수없이 전송을 하고 그대로 자리에 누워 버렸다." 31쪽_답장
내밀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함인주 씨와 나눈 서신을 보면서 교정본을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편, 교정교열가로서 타인의 글을 대놓고(?) 지적하는 능력이 저자 필력이겠거니 했는데 뜻밖에 기똥찬 표현이 담긴 위 문장에 감탄했다. 교정교열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다던 저자의 시니컬한 태도에서 비롯된 편견이었까.
가능하다면 될 수 있는 한 내 글에서도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죄다 빼내서 매끄럽고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고 싶다. 또, 글쓰기나 작법에 관한 강좌에서 종종 '말하듯 쓰라'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가가 콕 집어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내용에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은 말일뿐이고 말하듯 쓰라는 것은 구어체를 의미한다는 조언이 확 와닿았다.
저자와 함인주 씨의 오간 편지를 보면서 엄격, 원리원칙, 꼼꼼, 무표정, 무채색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진도만 열심히 나가려는 선생님 같달까. 성적에는 도움이 되지만 관계는 조금은 건조한.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냐고 묻는 질문에 왜 이렇게 질문했을까, 의미를 되새겨 보고 이상하다고 대답하는 저자의 시니컬한 성격(?)이 은근 재밌다고 해야 할지, 암튼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복지관에서 일할 때 동료가 출장에서 돌아 오자 'OO 님에게 전화 오셨다'라는 전달받고 전화기에 극존칭 하는 거냐며 웃은 적이 있었는데 저자 지적대로 아무 데나 '-시-'를 붙여 쓰는 게 다 감정노동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이 책은 글 좀 쓰거나 쓰려는 사람에겐 사전처럼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아주 유익하다. 다만 문법이 얕은 사람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라거나 "개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다." 같이 꽤나 직설적인 지적도 마다하지 않는데 좀 뜨끔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표현들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돕고, 글을 '잘'쓴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노력을 수반해야 하는 굉장히 피로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도 했다. 아무튼 백 번을 말해도 같겠지만, 이 책은 두고두고 끼고 봐야 할 글쓰기 사전이라서 빌려보다 그냥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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