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저자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고 저자의 문장을 더 보고 싶었다. 교정교열 세계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내가 국어나 문창을 전공하지 않은 이유겠지만 문법 자체가 습자지 같이 투명해서 읽다가 자주 사전을 들추느라 자연스레 느린 독서가 되고 있다.
쓴다는 행위가 독자로 하여금 제대로 읽게 하는 데까지 염두해 둬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서 많이 배운다. 어쨌거나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지 않은가.
읽다가 글쓰기 책에 감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책에 감탄 적이 없었다는 저자 글을 보고. 좁은 소견으로 글쓰기 책은 방법을 얻기 위함이지 감각을 느끼는 게 아니지 않나, 싶었다. 한데 사실 나는 잘 감탄하곤 한다.
"글쓰기는 번역입니다." 17쪽
의식의 흐름처럼 생각나는대로 긴 문장을 구사하는 힘과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에 연신 끄떡 거리고 있다. 반면 이제 써보라는 이야기에는 주춤 거렸다. 뭘 어떻게 쓰지?
"글을 쓰는 주체인 '나'가 쓴 글이 문장의 주어인 '나'가 쓴 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6쪽
‘나만의 문장’이 ‘모두의 문장’이 되는 과정을 ‘자연인’ 나에서 ‘화자’인 나로 바뀌는 것이라는 설명에 감탄했다. 자연인인 '나'와 글 속, 화자인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쓰는 글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상황이나 상태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연습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상태든 똑같은 정서의 망으로 걸러 내서 표현하는 행위에 불과 하다.(48쪽)"라는 글이 선뜻 이해 된 건 아니라서 방지턱에 걸린 것처럼 쉽게 문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곱씹고 있다. 두 '나'를 구분하는 것의 의미와 방법을 나는 모르고 있는 거겠지?
말과 글의 차이, 공간과 시간의 나열이라는 설명에 짜릿할 정도로 지적을 당한 느낌이다. 후다닥 그동안 써갈긴 내 글을 들쳐보니 대부분이 그랬다. '했고'의 퍼레이드였달까. 저자가 지적한 시간의 흐름이 죽어버린 글들이 한참 줄지어 있다.
그럼에도 이어서 말을 글로 옮겨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뮈, 쉬울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공간과 시간을 분리한다는 게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달까. 이어지는 장에서는 동어반복, 중언부언하지 않고 말하고자한 내용을 깔끔하게 글로 정리하는 방법은 시간의 배열이 방법이라 알려주는 데 솔직히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달라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강의를 들어야 하나?
"말과 글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101쪽_진정성과 솔직함이 담긴 글이라뇨?
말과 글은 언제든지 내용이 쉽게 바뀔 수 있다면서, 말과 글 모두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질서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란 점을 강조하는데 충분히 공감된다. 정치인이 대표적이 아닐까? 자신의 말과 글을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휙 바꾸는 능력자들. 아무튼 저자는 진정성이나 솔직함에 메이지 말고 자유롭게 쓰라 조언한다.
또 기억에 담아 둘 조언은, 긴 문장을 짧은 문장으로 나눈 뒤 내용 변화가 많으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나 접속 부사나 지시 대명사는 삼가하라는 건데 콕 집어 내게 하는 소리가 아닐까. 혹시 내 글을 보고 있나?
"누군가의 공감을 얻기 위해 쓰는 글이라면 체언보다는 용언이 제 역할을 사는 문장을 구사해야 합니다." 154쪽_체언 위주의 문장과 용언 위주의 문장
그렇군!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문제였어!
이 책의 부록같은 건 오늘부터 분량 채우기 일기를 써볼까, 하는 설렘을 준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 책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를 알게 되는 글쓰기 책 중 단연 으뜸으로 꼽아도 손색 없다. 빌려보다 또 사버렸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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