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 예능 작가의 다큐에서 시트콤으로 인생 장르를 바꾸는 법
인생 장르가 예능이면 좀 행복하려나? 예능 좀 한다 하려면 아무도 웃지 않을 타이밍에 웃을 수 있는 멘탈을 가져야 하는데 어쩐지 살다 보면 예능처럼 산다는 게 더 다큐일 것 같지만 작가는 그렇게 살려 마음먹었다니 열열이 응원한다.
인생을 예능 대하듯 살고, 글 쓰는 게 행복하고, 마케팅 수신은 거절해도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예능 작가 이휘는 <잘 쓴 이혼 일지>를 썼다. 심지어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인생을 골목 모퉁이 가게에서 달관한 주인장처럼 이렇게 맛나게 표현한 걸 보고 '필력이 이 정도였어?!'라며 썼던 글을 찾아봤어야 했다. 본 메뉴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밑반찬에 감격한 꼴이다. 딱 내 입맛에 맞는 맞이랄까.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통필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운뎃손가락이 아직도 욱신거리지만 꼬마와 맞짱을 떠도 될만한 놀림을 견디는 대머리 K와 복수 활극이 언젠가 끝이 궁금해지는 명례 씨 이야기나, 어느 아저씨의 다정함이 밝혀준 류대현 씨의 정체만으로도 또 한 번의 필사를 결심한다.
읽으면서 그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치열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중계동의 풍경이 나 역시 치열하게 가난했던 옥수동 판잣집 풍경과 닮아서다. 하꼬방이라 불리던 베니어합판으로 칸만 나눴지 방귀와 트림 소리마저 공유했던 집들이 들어찼던 옥수동 달동네. 나도 유년의 기억이 가난했던가, 기억에 빠졌다.
그에게 이혼은 별스럽지 않은 것이라서 커밍아웃하듯 내놓은 <잘 쓴 이혼 일지>를 읽어서도 그랬겠지만 생각해 보면 뭐가 됐든 안 맞아서 갈라서는 사람들에게 "참 잘했어요"라고 팔목에 도장이라도 찍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안 맞는데 참고 살면서 원망하고 자기 영혼을 갉아먹는 세대는 내 부모 세대면 충분하다. 어쨌든 <미혼입니다 그런데 실은…> 에피소드를 읽다가 주먹을 꼭 쥐고 다짐하듯 이혼으로 받게 되는 사회 통념의 폭격을 버텨내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져 멋졌다. 부디 그가 앞으로도 멍들거나 다치지 않으면 한다.
이혼을 국가는 절대 권장하지 않겠지만 속이 썩어 문드러지느니 시원하게 하는 게 좋고 충분히 박수를 칠만한 일이다 싶다. 요즘 이혼 숙려나 결혼 지옥 따위에 출연하면서까지 마음을 왜 돌려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누가 그러더라, 사랑만 하기도 짧은 게 인간의 수명이라고. 꼭 마더 테레사가 아니더라도 인류애를 뿜어내며 참고 사느니 다시 1인 가구가 되는 게 괜찮을지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차라리 하고 나서 후회하라지만 사실 그건 너도 죽어 봐라, 하는 복수의 심정이 다분하다. 하고 후회하려면 자글자글 층진 주름과 화병을 감당해야 한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게 지혜로운 거다. 암만.
읽는 내내 신기할 정도로 빠져들고 위로를 받는다.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 무리 속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싶을 만큼 깊은 다정함에 취한다.
이 책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에세이로,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기 좋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유머를 장착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읽고 나면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친구가 생각나고 감정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주면서 '피식' 웃게 되기도 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에세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기 좋은 책."
"웃음을 평가받기 때문일까. 볼 땐 쉬워 보여도 만들 땐 어렵다. 우리끼리 회의하면서 혹평할 땐 괜찮은데 밖에서 들을 땐 서글프다." 160쪽, 인생은 예능
"나는 가끔 내가 실수로 만들어진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의 실수에 의해서 태어났다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크고 작은 실수 덩어리들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198쪽, 실수로 만들어진 인간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배운 것은 인생에는 언제나 ‘다음 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p.219
#대머리는수영모를쓰지않는다 #이휘 #유월서가 #서평 #책리뷰 #도서인플루언서 #위로 #유머 #공감에세이 #추천도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