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에세이] 아픔에는 온기가 필요해

| 정신건강 간호사의 좌충우돌 유방암 극복기

by 암시랑


작가 프로필을 보다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이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사람. 그래서 왁자지껄 수다스럽던 이가 동굴 같은 방으로 들어앉게 된 처지가. 나와 같았다.


작가처럼 유방암은 아니었지만 유도 선수가 목이 부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런 생채기처럼 장애로 뚜렷하게 남았다. 아픈 날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나와 똑같았다.


이 책은 정신건강 간호사인 박민선이 유방암 환자로 고통을 건너는 과정의 기록이다.


뻔하지만 난 이 병을 이렇게 버티고 이겨냈어,라는 에세이일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자기계발서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던 초짜 간호사 시절부터 화려(?) 했던 연애사와 시월드를 거치며 삶이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를 솔직 담백하게 적는다.


맞다. 잊고 있었지만 나 역시 퇴사 후에 내가 일이 얼마나 고팠는지 깨달았었다. 그저 관계에 지쳐 있다고 핑계를 대며 도망칠 생각만 하다가 정작 내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떠나고 나니 나 혼자 스스로를 볶고 있었다. 지친 건 일이 아니라 마음이었는데 얼마든지 다독일 수 있었던 상태라는 걸 알았다. 턱밑까지 몰아쳐 숨을 쉴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가까이에선 결코 볼 수 없던 것들이 떠나고 나서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적잖이 공감됐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삶에 끌려가는 건 아닐까,라는.


"'오늘'은 선물이었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소중해졌다." 67쪽


유방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그가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이 선물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내겐 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환자실과 병동을 오가며 손가락 하나 딸싹하지 못한 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숨만 쉬다가 어느 날 영화처럼 손가락이 들썩였을 때 모두들 기적이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런 기적을 보여 주려면 치아가 부서질 만큼 힘을 짜내야 고작 꿈틀하는 하는 일이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죽음이 매 순간 '끊고 싶은' 영역의 것이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는 그마저도 좌절감으로 태풍처럼 몰아쳤다.


그렇게 35년을 견뎌낸 지금도 불편하게 삐꺽거리는 몸뚱이는 여전하지만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상처를 더 크게 만드는 법'이란 것쯤은 알게 됐으므로 처음부터 내겐 선물이 아니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KakaoTalk_20250623_160913188_01.jpg 96쪽


아무튼 힘든 치료를 버텨오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 제목처럼 훈훈한 온기가 훅하고 끼쳤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과정이 담백해서 나 역시 담백하게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은 간호사가 아닌 유방암 환자로 지내야 했던 5년간 고통이 일상적이었던 찐한 투병과 그 속에서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을 솔직·담백하게 일기처럼 기록하는데 지나간 상처에 매몰되거나 미화돼서 극복의 서사로 끌고 나가지 않으면서 제목처럼 아픔에는 누구라도 적당한 온기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가 위로를 하는 게 아닌 받는다.


딱히 크고 길게 아파보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아프고 난 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라는 이야기에 "다치고 나서 사람 됐다"라고 뼈 때리던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한참을 그 문장에서 멈춰있었다.


다들 웃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던 그 소리는 한참을 괴롭혔었다. 그로부터 이미 30년이 넘은 이야기여서 당시 느낌은 옅어졌지만 아마 짧았던 21년이 부정 당한 느낌이었으려나.


KakaoTalk_20250623_160913188_02.jpg 175쪽


이 순간에도 투병 중에 있거나 그 과정을 건넜거나 혹은 잘 모른다 해도 삶에서 느닷없이 아픔을 맞닥뜨리는 일이 견뎌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과 공감을 준다.


보통의 일상이 특별해지는 마법 같은 책이다. 무엇보다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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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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