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에세이] 이제 오븐을 켤게요

| 빵과 베이킹, 그리고 을지로 이야기

by 암시랑

작가는 16년 전에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3년 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베이킹을 하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을지로에 <문토>라는 베이킹 공방을 열었다. '저 사람처럼 누구나 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주는 '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내가 부러운 건, 뭐가 됐든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럴싸해 보일 정도의 손재주를 가졌다는 거다. 무역 일을 하다 빵을 만든다니 내겐 놀라운 능력자다.


나는 다치기 전에도 전구 하나 가는데도 손이 가는 사람이었고 다치고 난 후에는 손이 자유롭지 못해 더 그렇다. 작가가 원래 베이킹을 꿈꾸던 사람 같지는 않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책까지 펴낼 정도니 더 더 더 부러울 수밖에.


한데 작가의 '글의 시작'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생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어째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 철봉이나 우주의 팽창 그리고 멀어져 간 친구의 생각 같은 것들일까 싶어서. 이딴 게 그에게 어떤 파장을 주어서 그걸 없애자고 몰입도 높은 베이킹을 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그가 무섭다니 무서움이겠거니 했다. 여기선 베이킹이 중요한 거니까.


딱히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그의 공방은 빵뿐이 아니라 사람과 을지로의 맛도 담겨있어 재밌다. 신기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KakaoTalk_20250819_150954412_05.jpg


빵 만드는 건 어렵지만 그중에 소금빵이 조금 더 그렇고 특히나 개인의 손동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니 신기하다. 게다가 반죽은 한 번 시작하는 빠꾸가 없다는 게 왠지 더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소금빵 먹을 때마다 작가를, <문토>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표현은 디테일하진 않지만 섬세하다. 작가의 설명을 볼 때면 그 오븐의 온도처럼 차츰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사람들과 만들고 나누어 먹는 공간에 슬쩍 껴있는 느낌도 들고.


그나저나 내가 먹어본 에그타르트는 그닥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 보면 한국식이었나? 그럼 포르투갈식을 맛보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나?


베이킹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베이킹 자체의 까다로움이나 재료 수급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들. 그냥 먹기엔 노발대발할 수준의 크기가 되레 베이킹에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도 알았다. 역시나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KakaoTalk_20250819_150954412.jpg 33쪽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진짜 미안한 일이 되니 신중해야 한다." 106쪽


망해버린 베이킹 클래스에서 노심초사하는 작가에게 운영진 여성이 해줬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T라서 그런지 몰라도 작가가 애를 쓰긴 했지만 공유 주방에 대한 준비가 서툴러 망한 건 망한 거다. 그러니까 비용까지 지불하고 부푼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고 을지로에 공방을 왜 열었는지 아냐고 묻길래 알려줄 줄 알았다. 그쪽에서 쭈욱 살았나?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사람 많고 복잡한 을지로일까 궁금했는데 궁금함으로 남았다. 개취이긴 하지만 엔틱과 레트로 가게가 많아서? 베이킹 공방인데 엔틱이 중요해? 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조금 웃었다.


KakaoTalk_20250819_150954412_01.jpg
KakaoTalk_20250819_150954412_02.jpg
138쪽 | 175쪽


작가의 공방에서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이킹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자꾸자꾸 만들어 보고 싶을 만큼 자신감을 주려 애쓰는 공방에서 만들어낸 베이킹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의 중간중간 앙꼬처럼 들어 간 사진이 이 책을 더 맛있게 만든다.


책을 보면서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 가득한 베이킹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빵이 고소하게 구워지는 오븐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빵으로 맺어진 사람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제오븐을켤게요 #문현준 #이소노미아 #서평 #책리뷰 #도서인플루언서 #한국에세이 #감성 #베이킹 #빵공방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첫 여름,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