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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에세이] 스미는 목소리

| 외치지 않아도 되는

by 암시랑

'스민다'는 말처럼 조심스럽고 간절한 느낌의 말이 또 있을까. 와락 쏟아지는 장대비가 아니라 오는 지도 모르게 사부작 내리는 부슬거리는 비가 어깨에 앉아 스미려 애쓸 때 휙 하고 나타난 손길에 털어내 질까 마음이 부산스러워지는 순간이 머리에 그려졌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닿으려 부단히 애쓰는, 그럼에도 조심스러워 작아지는 목소리로 스미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읽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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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병에도 매몰되기 쉬운 이런 세상에서 작가는 양극성, 불안, 수면 장애와 메니에르 등 다양한 질환까지 겪고 있는 질병인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독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스몄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책이다.


하…. 작가 소개를 읽다가 절로 탄성(절대 한숨 아님)이 새어 나왔다. 작가와 비슷한 결을 가진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휘몰아쳤던 시기가 있었다.


보란 듯 사회에서 얼마쯤은 비켜난 사람들의 글을 쓰고 싶었다. 꽤 여러 해 동안 당사자로 그런 글을 썼다. 한데 작가가 보듬는 사람들의 수준이 거의 마더 테레사급이 아닌가! 그가 멋지니 내가 주눅 들었다. 또 투명하길 바라는 그의 글을 기대하게 된다.


"관통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땀이 나지 않아 쨍한 하늘 파란 여름은 고통스럽고, 비라도 오고 습한 장마철엔 다리를 냉동고에라도 집어넣는 것처럼 시리고 아려서 이를 악무는 날이 허다했다. 그걸 아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표현이 아닐까.


그런데 작가 역시 그런 고통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그런 무게를 문장에 고스란히 담았다. 단어 하나하나 고르고 골랐음을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KakaoTalk_20250906_150912444_02.jpg 34쪽


"어차피 타인이란 타인을 알 수 없는 존재이니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관조하는 대상들에게 말을 건네는 게 서로가 상처를 덜 받는 일이라 생각했다." 57쪽


곳곳에서 퐁당거리며 결이 비슷한 생각이나 내가 하고 싶던 말들이 긴 파장을 남겼다. 아프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았으면 미처 다다르지 못할 생각이나 의식들을 꾹꾹 집어냈다.


KakaoTalk_20250906_150912444_03.jpg 165쪽


한편 걱정도 됐다. 자칫 나 이만큼 아파,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라며 굳이 상처를 들쳐 아프다고 이해받으려 징징대는 것으로 비칠까 봐서. 하지만 희망과 절망 때론 외로움이 일상에 스며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거 똑같지, 뭐라며 털어내는 독백이 들리는 듯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아픈 것도 그래서 상처받는 것도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를 그냥 나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허리 곧추세워 선언하는 느낌이 들어 멋지다. 언제고 제주도에 간다면 우연히라도 혹은 스치듯이라도 만나 보고 싶다.


만약 타인을 이해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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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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