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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애들은 착해요

: 오만과 착각

by 암시랑


면접에서 관장이 무심히 던진 '어쩌다'라는 말은 민율의 머릿속에서 젖은 낙엽처럼 질척하게 엉겨 붙었다. 마치 폭력처럼 움츠러들고 위축되게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불편한 몸으로 이십여 년 동안 쉼 없이 달린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 그동안 바닥난 체력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대부분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런 현실은 다시 직업학교로 돌아가는 것에 망설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운영팀장이 말한 '생각보다 적은' 금액은 민율에겐 답도 없는 액수였다. 반토막에 그 반토막 났달까. 자신도 모르게 "정말 적네요"라고 작게 내뱉었다. 모두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건 '거봐, 그럴 줄 알았지'라는 의미처럼 보이기도 했고 민율이 적은 연봉에 올 일이 없다는 단념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 은채는 도착할 때까지 창밖만 바라보며 침묵했다. 민율은 그런 은채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한꺼번에 몰려든 피로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파묻고 등받이 뒤로 목을 늘어뜨리고 깊게 눈을 감았다. 속이 터져 열불이 난 듯 은채는 성큼성큼 걸어가 정수기에서 쏟아지는 얼음을 큰 컵에 가득 담고 찬물을 채웠다. 소파에 파묻혀 유독 왜소해 보이는 민율을 흘끔 보고는,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많이 차가운지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털었다.


"그래서 다니겠다고? 그 연봉을 받고?"


은채는 답답했는지 살짝 삐죽하게 말했다. 민율이 눈을 뜨고 틈을 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건 흡사 배터리가 다 된 인형이 더디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개 떨구고 있어선지 아니면 은채의 걱정스러운 얼굴 때문인지 민율의 눈앞이 순간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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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걸 좋아하고 타인의 암시랑을 알아채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에세이 <행복추구권>,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하게 되는>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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