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인문] 게으름 예찬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by 암시랑


게으름이 산업화 시대 그것도 눈만 깜빡여도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의 정신을 헤집어 놓는 시대에 느린 것도 아니고 게으르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출근길, 정차된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는(나는 버린다는 표현을 쓰지만)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아주아주 더럽게 힘든 기상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서두른다. 덕분에 나는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반 정도를 일찍 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이 시간이 어쩌면 하루 중 오롯이 내 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게 나는 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는다. 조용히 여유롭게라는 작가 말처럼 게으름을 부리는 걸지도.


작가는 게으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즉 빈둥거림이 주는 여유라고 하고 있다. 이 시간적, 감정적 느낌은 충분히 긴 호흡을 갖게 만든다. 소설 '리플리' 속 리플리의 삶에서 살인이라는 범죄를 가려 놓고 본다면 리플리는 가볍고 유쾌한 혹은 한가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여유 혹은 한가함은 할 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고 게으름은 할 일이 없어 어쩔 줄 모르는 것이 그 차이가 아닐까. 결코 이 한가함이 게으름이 아니다. 작가는 그런 게으름에 대한 논리를 장황한 말로 풀어 내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 한 문단으로 정리된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느긋하게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 다울 수 있다." p29


맞다. 우린 머리를 비우고 멍 때리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노예처럼 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사실 인간의 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살기 위해선 숨쉬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니 말이다.


작가가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런 물리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어쨌거나 작가도 확실히 '아무것도'에는 관에 드러누워 숨조차 쉬지 않는, 즉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p42


그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예찬하고 있는 작가의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는 염세적 주절거림에 허무주의를 살짝 포장해 징징대는 듯한 톤을 가졌다. 내 감정과는 상관 옆이 옆에서 누군가 "그 인간 때문에 너무 힘들고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하소연을 하는 것처럼 듣지만 들리지 않는 대화처럼 읽고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활자만 읽게 된다.


사유 없는 진짜 그저 읽기만 하는 독서. 작가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용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는 나로서는 분명 주제넘는 일임이 분명하므로 말을 아낀다.


작가는 한편으로 게으름이나 여가는 치열한 '일'을 한 후에 주어져야 극대화된다고 한다. 늘 주어진 여가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하루 종일 일에 치였던 사람에게 휴식이나 잠은 에너지를 보충하지만 실업자에겐 기 빨리는 일일뿐이라고 하고 있는데 자면 잘수록 더 피곤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책 뒤표지에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목적 없이 걷고, 인맥에 상관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트북을 펼칠 시간에 거실 소파에 누워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일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꽤나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무슨 슬로건처럼 부르짖으며 살아왔던 세대다. 뭐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던 시대였고, 아침 6시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가훈은 근면 아니면 성실이었다.


게다가 밥을 먹으면서도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빨리 먹는 기술을 지녀야 했을 정도다. 세대가 그렇다 보니 늦잠이나 게으름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죄악처럼 여겼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근면과 성실은 기본 과목이었다. 그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 개천에서 용은 고사하고 지렁이도 나지 않는 시대다 보니 늦잠에 어느 정도의 게으름은 휴식을 통해 머리를 비우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방편처럼 생각되고 있다. 격세지감. 휴일 12시까지 늘어지게 자는 딸아이를 보며 게으르다고 잔소리했다가는 꼰대 소리로 되려 내가 상처받는 이 시대가 난 너무 서글프다.


저자의 기억을 믿어야 하겠지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말했다던 독서의 정의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삶을 대신할 막강하지만 핏기 없는 대체물"이라니. 독서를 정의한 세상 그 어떤 표현보다도 멋지지 않은가.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p143


또한 빈둥거리기와 아울러 작가는 놀이에 대한 문화를 역시 그만의 문체로 게으르게 읽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성과라는 결과에 매몰된 현대사회의 '일'은 그저 고되게 삶의 대부분을 해야 하는 이유로 쉴 수 없는 현실에서 이 현실적인 게으름은 삶의 균형을 맞추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 하고 있으며, 우리가 좀 더 생산적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진정한 게으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상당히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될 듯하다. 딱히 어디 가? 무엇 때문에?라고 질문한다면 명확히 대답할 거리를 찾긴 쉽지 않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으름에 대한, 그것이 결코 비생산적이지 않고 죄를 짓는 게 아니어서 죄책감 따위를 느끼며 낮잠을 자도 된다는 이야기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시종일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데다가 허무주의를 표방한 염세적 철학자처럼 고리타분한 말투로 징징거리는 듯하달까.


내가 너무 민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호불호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충분히 게으르고 싶은 나로서는 마음의 위안을 줄뿐더러 눈치도 덜 보게 만들 방패막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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