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도달해야 할 결승선이 아님에.
"우리의 오늘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행복합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라는 책에서 이은재 작가가 했던 말이 간절한 하루입니다.
출근길, 막히는 도로.
분명 어쩌지 못할 이유로 이리저리 끼어들 텐데 그 사람들의 다급함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슴은 하는데 머리는 못하고 맙니다.
또, 모든 업무가 꼬이도록 자신의 일을 해내지 못하는 동료를 보는 일이나, 오랜만에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은 반가우면서도 만나자는 이야기에 깊은 탄식이 묻어 있어 어깨에 올라 타 있는 피곤함이 갑자기 널뜁니다. 결국 기약 없는 약속으로 거절 아닌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다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는 불평불만 가득한 하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작가가 이야기 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기랄 이지 말입니다.
사실 지나고 보면 욱했던 일들이 별일 아니었음에 얼굴 붉힐 정도로 민망할 오늘, 불현듯 암 투병으로 생체 기능을 이미 많은 부분이 소실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오랜만의 통화에 이제는 "신의 뜻에 맡기고 있다"라는 형수님의 말을 들으면서 불편하지만 이렇게라도 휠체어를 타고 일 할 수 있는 직장과 퇴근 후 수고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가족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딱히 과외를 받은 것도 아닌데 행복은 도달해야 하는 목표나 이상향쯤으로 여기고 삶에 박차를 가하며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가열차게 말입니다.
매일 아침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끔찍하게 일어나기 힘든 아침 혹은 그보다 더 일찍,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으스름한 공기를 헤치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전으로 치러야 할 직장으로 향하죠.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일을 해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자기 계발서를 신봉하게 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고된 노동일 뿐이고 정신 건강에 좋다는 '좋아하는 일'은 더더구나 아닌 일이지만 생명연장은 아니더라도 월급 연장은 되니 말이죠.
예전 유명 피로회복제 광고에서 보여주던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의 비교는 열위(劣位)에 있지요.
직장인에게 사회는 점점 살아 남기 위해 동료를 죽여야 하는 전쟁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글이 되어 가고 이런 현실 앞에 행복을 논하는 일 자체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닿을 수 없는 높이 치솟은 목표나 이상향이 되어버린 행복을 향해 펄쩍펄쩍 뛰기 여념이 없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치고 힘이 빠져 주저앉게 됩니다.
그리고 깊은 한숨과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에 자괴감까지 갖게 되는 건 덤일 테지요.
결국 양쪽 가슴엔 비장함이 감돕니다.
한쪽에는 얇은 월급봉투, 다른 한쪽에는 사직서를 품고 있습니다. 다들 그러지 않나요?
우리는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이지만 나름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나가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직장 상사에게 일 년 치 욕을 몰아서 먹고 그의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으로 탈바꿈하고 감정은 끈적끈적해지고 나서야 퇴근이란 걸 합니다.
대폿집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회포를 푸는 걸로 반복되는 하루를 버틸 힘을 짜내야 하는 우리는 어쩌면 행복이 뭔지 잊으며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주 한잔 기울이다 문득 들여다본 안주에 오징어 다리가 하나 더 붙어 있거나,
하루의 운세를 점치며 조심스럽게 쪼개 보는 나무젓가락이 환상적으로 균형 잡힌 두 가락으로 쪼개지거나,
지친 퇴근길, 지하철 승차권 발권기에 미처 찾아가지 않은 잔돈에 미소가 번지거나,
붐비는 차량, 힘겹게 틈을 비집고 서자마자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 서거나,
더구나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스포츠 신문이 놓여 있거나,
집 앞, 떨이라며 한 봉지 값에 두 봉지를 안겨주는 붕어빵 아줌마의 인심에 감격하거나,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아이들이 자지 않고 웃으며 맞아 주거나,
아내와 마주 앉아 눈웃음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일들.
우린 그런 일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행복은 도달해야 할 결승선 같은 게 아님을 안다면 말이죠.
그저 고개만 돌려도,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 널려 있는 것임을 안다면 말이죠.
그런 행복을 미안하게도 친구의 안녕하지 않은 건강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