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다 그럴까? 2

그럼에도 참 어려운 것

by 암시랑


녀석의 이름을 앞세워 전화벨이 울렸다.

이런저런 회사일로 정신이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면회를 다녀온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하는 마음 마음으로 냉큼 받았다.

인사도 할 겨를 없이 다급하게 형수님의 말이 쏟아진다.


"나 J형수예요. 알조? J 바꿔줄 게 친구 기억하는지 몇 마디 물어봐 줘요. 가족 아무도 몰라봐서요"


순간 마음이 어두워졌다. '더 많이 안 좋아졌나?'라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J야, 내 목소리 들려? 누군지 알겠어? 내 이름이 뭐야?"

"(침묵) 새끼.. (피식 웃는 소리) 민권이.."


단답형으로 짧은 대답이긴 했지만 안도감에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한증막에 들어온 것처럼 순식간에 열감이 차올랐다.


"그래! 맞아! 나야. 근데 내가 지금 밖에서 일하는 중이라 통화를 오래 못해… 또 얼굴 보러 갈게"

"(침묵) 민권이.. (피식 웃는 소리)"


그리고 어렴풋하게 형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했지만 매정하게 수화기는 뚜뚜 소리를 내며 대화를 끊어버렸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 부신 햇살과 이른 여름 치고는 많이 더운 날씨에 짧은 바지를 입고 깔깔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가보지 않을 수 없어 다음 날 퇴근길에 들렸다.

전보다 살이 찐 건가? 부었나? 훨씬 거뭇한 얼굴에 살집이 붙은 것 같은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다.

녀석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웃음은 입꼬리가 채 올라가기도 전에 굳어졌다.

녀석이 웃지 않는다. 아니 시선이 나를 넘어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한다. 나를 몰라 본다.

고작 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이게 말이 돼?

충격으로 화들짝 놀라 녀석의 무릎을 흔들며 물었다.


"야 인마! 나왔어… 내가 누구야?"


대답하지 않는다.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내가 누구야? J야! 내 이름이 뭐야? 나 좀 봐봐."

"(침묵) 새끼.. (피식 웃음소리)"


내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같이 간 친구가 잡아 흔들며 묻는다.


"J야! 그럼 내가 누구야? 나는 알겠어?"


J는 느릿하게 친구에게 시선을 옮긴다.


"새끼.. 민권이.."


여러 차례 물었지만 내 이름은 기억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녀석의 기억에 나는 없고 내 이름만 있다. 젠장.


'원하는 대로만 살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라는 여행스케치의 노래처럼 우린 두렵긴 해도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게 산다는 걸까?


J가 병원에서 삶과 죽음을 심판하듯 머리에 구멍을 세 개나 내면서까지 검사를 하는 동안 또 다른 친구는 50년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결혼식을 올렸다.


알 수 없는 게 아무리 인생이라지만 산다는 게 J처럼만 같다면 너무 억울하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난 지금 J는 내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잊었다.


지금 난, 산다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친구 #에세이 #교모세포종 #뇌종양 #기억상실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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