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나는 유도선수였다. 아니 유도선수다. 마음만큼은 아직 메트에 있으니까.
스물한 살. 1990년 6월 6일 현충일. 호국용사도 아닌데 이날이 내 기념일이기도 하다.
난 이날 죽었다 살았다.
목이 부러졌다. 그런데 엠뷸런스가 아닌 그냥 봉고차에 실렸다. 좌석을 젖힌 채로 목이 부러진 나를 그냥 싣고 내달렸다. 부러진 목이 아예 으스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숨을 껄떡였더니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준다.
제기랄 먼저 지입에나 대보지! 산소는 이영애가 다 마셨는지 산소는 커녕 콧바람만큼의 바람도 나오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아니다. 그냥 정신줄을 놓은 거다. 그렇게 숨이 멎고 9시간 만에 깨어났다.
어두침침한데 어디에 있는지 가늠도 안 된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리는 거대한 기계음이 끊이질 않아 더 두렵다.
춥다. 공기가 차다. 지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이미 병원 한 곳을 들려 손을 쓸 수 없다고 내돌려졌다. 그리고 이 곳에서 홀딱 벗겨져 이리저리 지하를 옮겨 다니며 검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답답하시네. 그러니까 여기서 죽나 집에 가서 죽나 어차피 얜 죽어요. 그러니까 그냥 데려가세요."
저런 시베리아십센치 같은 놈을 봤나. 저렇게 서글픈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하는 것도 기술이다.
그나저나 '누군지 불쌍하네'라고 생각하는 찰나 아버지 얼굴이 코끝이 닿을 정도로 쑥 들어온다.
평소에 별로 살가운 적 없던 터라 참 많이 당혹스럽다.
아니 젠장 본인을 아빠라고 나를 아들이라고 큰 소리로 광고해놓고 알아보겠냐니 이 무슨 시추에이션이래?라고 생각했다. 순간 내가 머리로 떨어졌으니 기억상실이라고 생각하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내입에서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세요?"라는 대답이 튀어 나갔다.
순간 아빠의 동공은 초점을 잃었고 엄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털썩.
나는 한참 빛나는 스물한 살에 목이 부러져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버텨낸 재활과 뻑하면 임금체불에 시달렸던 8년여의 애니메이터를 지내고 대박을 꿈을 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열었다가 사업가의 자질이 없다는 생각에 재빠르게 닫았다.
그리고 잠시 백수의 길을 즐기고 디자인 강사가 되어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강사로 7년여를 살았다.
하루 10시간을 강의로 먹고살다가 이러다 제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사회복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7년이 지났다.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아닌 좋은 사회복지사이길 바라며, 그 좋은 일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에 살아 보는 게 소원인 사회복지사다.
이제는 경치와 공기 좋은 곳에서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책방에 앉아 있고 싶다.
누군가는 죽을 고비를 넘긴 것에 누군가는 전신마비의 장애를 이겨낸 것에 또 누군가는 장애를 지녔음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며 인생을 개척한 것이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누군들 인생이 파란만장하지 않겠는가. 다들 태어난 김에 사는 거고 사는 김에 잘 살아 보겠다고 이를 악무는 게 인생이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인생의 몇 차례의 변곡점을 더 만들낸 시간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행히 그냥 주저앉거나 누워버리지 않고 느리지만 제대로 걸을 수 있게 손을 잡아 준 아내가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나누고 싶어 연재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