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하자니, 우린 함께 한 시간이 부족했어!
2019. 10. 23. 새벽 5시.
결국, 친구는 그렇게 갔다.
교모세포종이라고 확인한 지 불과 4개월 그것도 한 달여는 먹는 것도 튜브로 해결하며 눈만 껌뻑이며, 살아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저 숨이 붙어 있다는 게 맞았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내 친구는 사는 게 참 팍팍했는지 딱 절반만 살았다.
아쉬웠을까? 아니면 속 시원했을까? 어쩌면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묻지도 못했지만 나라면 좀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뭔들 잘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아무리 노력한들 나아지지 않는 삶은 반 평생, 아니 친구에겐 한평생이었지만 어쨌건 하는 일마다 실패해도 오뚝이처럼 어떻게든 일어나려 애쓰는 팍팍한 삶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어쩌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답이 아니었을까.
절친의 기준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1년에 단 1번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쌍욕을 퍼부을 수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 절친의 기준에 있다면 녀석은 분명 절친이었다. 제길, 죽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과거형이 어울리는 게 짜증 난다.
모두 핑계라고들 하면서도 진짜 먹고사는 게 쉽지 않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녀석이 솔로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와이프를 불쑥 소개해 줄 때도, 대리 운전 사업을 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가 “사업은 잘 되니?”라는 물음에 “열심히 튀기고 있다.”라는 대답을 한 후에야 녀석이 사업에 실패하고 수원역전 포장마차에서 분식을 팔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그저 우리가 한참을 연락도 못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세상 욕만, 먹고살기 힘듦만 하소연하고 지나쳤다.
1983년, 14살. 내 친구는 중학생의 얼굴이라고 하기엔 말도 안 되게 어색한 삼십 대의 얼굴이었다. 당시는 5공이었고 서슬 퍼런 삼청교육대가 아무나 잡아가서 교화라는 걸 시키던 시기여서 그런 얼굴로 미소년의 얼굴(못 봤으니 믿기 어렵겠지만 그땐 그랬다.)을 한 나와 같이 다니다 보면 100미터만 가도 몇 번씩 불심검문을 받아야 했다. 신분증을 내놓으라는 경찰의 요구에 당당하게 학생증을 내놓던 우리는 가끔은 진짜 파출소에도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이야 웃을 수 있지만 당시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경찰들에게 연행되는 일은 초등학생 티를 막 벗은 아이들에게는 바지에 오줌 싸지 않은 게 다행인 일이었다.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세월의 풍파를 얼굴로 정통으로 받아낸 친구의 얼굴 탓이라며 식겁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살다 보면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이곳저곳 이사를, 이 회사 저 회사를 떠돌다 보면 변하는 시기마다 친구는 사귀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는 게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분명 '회자정리'다. 하지만 그렇게 별 일 아니다 싶을 수 있는 건 친구는, 친구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도 다시 재회가 가능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길쭉하고 네모진 사각 틀에 갇혀 얼마나 뜨거운지 가늠도 안 되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친구와는 다시는 재회할 수 없다는 분명한 이유가 착잡하고 답답하고 허전한 아니 아직은 내가 잘 모르는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어제 이후 줄곧 지속되고 있다.
눈물도 안 나온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에도 미안해지는 건 또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드라마나 영화만 봐도 통곡을 하면서도 정작 친구가 죽었는데, 불구덩이로 뛰어드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는데 눈물을 참는 것도 아니고 안 나오는 게 더 슬프다.
선뜻 밤을 지새우며 친구의 곁을 지켜주겠다는 친구가 많지 않은 것도 다 세상 탓이려나? 먹고살기 팍팍하니 출근도 해야 하고, 체육관도 열어야 한다니 그저 웃으며 보내줘야 하지 않겠나.
친구의 친구들, 그러니까 내 친구들도 처자식이 있으니 죽은 친구의 곁을 밤까지 새우며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로 우정의 깊이를 이야기하고 탓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아니 당장 내일 내가 죽어 누워 있으면 함께 밤을 지새워 주길 바란다. 그래 줬으면 싶다.
먼 길 가는 동안 내 곁을 지키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헤아리며 간다면 그 또한 덜 외롭지 않겠는가 말이다.
제길, 눈물은 왜 안 나오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