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지치고 현실에 상처받는 그녀들을 위하여
나는 결혼 20년 차로 내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가볍게 아주 심플하게 '내 아내도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남녀의 사랑 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읽다가 초장부터 혼쭐 나는 듯하다. '이혼'이라 쓰고 '페미니즘'이라 읽어 될 만큼 남녀 성차별로부터 시작한다.
"결혼이라는 감옥에는 여성만 들어온 것이 아닌데 아직도 결혼은 여성에게만 감옥이 되어 자유는 없고 책임져야 할 일 투성이다." p38
'충조평판'. 충고하고 조언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습관. 이걸 제일 잘 하는 나는 그다지 좋은 남편이나 멋진 아빠는 글렀다.
읽다 보니 저 말이 애틋하거나 애정 애정 한 뉘앙스가 아니라 후회와 탄식, 그리고 체념이 찐득찐득하게 눅져 더 이상 뭘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금성, 화성 남녀고 또 하나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다. 왠지 사람이라고 쓰고 남편이라 읽혔다. 금성 남자와 화성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성에서 존재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이니 어차피 서로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수밖에 없는데 우린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서로에게 같은 행성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그게 인생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좋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르듯이 결혼이 후회되어 다시 혼자로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p168
솔직히 결혼에 대한 부정적 느낌이 많이 난다. 그렇다고 결혼이 마냥 행복에 미쳐 날뛸만한 일이 아니라 해도 살짝 긍정적이도 될 텐데 온통 부정적이다. 저자 자신이 결혼 후 그런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소회와 여전히 뒤끝이 남은 듯한 감정 골이 느껴진다.
하지만 물론 결혼이 무조건적 행복의 지름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해결책이 아님을 전력을 다해 알려주려 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든다.
밥을 주는 사람을 개는 주인으로 여기고 충성하는 반면 고양이는 종으로 생각한다는, 그래서 부부는 고양이가 아닌 개로서 서로에게 주인이 되어 왕처럼 왕비처럼 대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공감이 된다. 나는 오늘부터 왕이 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아내와 단둘이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내는 집에 돌아온 후 몸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남편과 아이들의 저녁을 차렸다. 식구들이 다 먹고 나자 식탁에 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휴, 먹었으니 또 치워야지"라는 들릴 듯 말 듯 한 혼잣말. 그게 들렸다. 밥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는 일은 원래부터 아내의 몫이었을까? 몸이 좋지 않았는데 날름 먹기만 한 일이 후회되고 반성된다. 이렇게 나를 무릎 꿇게 만드는 내용이 너무 많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p212
에필로그에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 싸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 이전의 내용들엔 백번 공감하고 이해한다 치더라도 아니 확실하다 하더라도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부부가 싸우다 싸우다 감정이 상하면 요즘은 물을 베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벤다. 아주 활극을 벌인다. 오죽하면 부부 싸움 중에 "죽여라, 죽여!"하며 대드니 욱해서 죽였다는 일도 있었지 않은가. 더 사랑하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굳이 왜 싸워야 할까. 부부가 UFC 선수일 리도 없고.
어쨌거나 이 책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혼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기혼 여성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책이다. 이혼하고는 싶지만 타인이나 사회적 시선, 아이들, 자신을 고이 키워주신 부모님 혹은 스스로의 자책으로 이혼보다 버티기를 해야만 하는 그녀들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직접 이혼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시선이라서 더욱 공감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혼을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의 가부장적 남성우월을 질책하는 페미니즘에 가깝다는 느낌도 든다.
90년 생이 오고 있는 이 시대에 82년 생 김지영이 생각나게 하는 여성 독자라면 고구마 백만 스물한 개쯤 씹어 먹는다는 느낌이 들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