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보라 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몇 페이지 읽지 않았는데도 오늘의 일들로 내일의 일들이 염려되지 않은 마음이 느껴진다. 그 여유로움이. 마티라 바다가.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이 허락되는 동안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p23
뭐랄까. 그곳에서는 일상에서 그냥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닌 보려 애써야 보일 똥 말똥한 것들을 쉽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남태평양 아침의 따뜻한 햇살이 아니라 그 햇살을 타고 넘나드는 몽글몽글한 나른함이라던가 수영장처럼 잔잔한 마티라 바다의 파도가 아니라 락스의 강렬한 냄새처럼 콧속을 뻥 뚫고도 남을 바람 냄새라던가.
아무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보고 사는 듯해서 내 삶에서 꼭 백만 스물한 배는 부럽다.
다채롭기 그지없다던 마리오와 꼬맹이와 오테마누산을 오르며 쉴 새 없이 떠드는 꼬마를 보며 "저렇게 하나 마나 한 말들을 세상 신나서 하다니."라고 느끼는 작가의 감성에 적잖게 가슴 한쪽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떠드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입을 나는 쉴 새 없이 막으려 애썼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작자가 여행자와 현지인의 경계를 사는 것처럼 혹은 내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사는 것처럼 삶에 그게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경계를 살아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호하거나 몽환적이거나 하게 말이다.
때론 너무 선명해서 방향이 흐릿해지거나 너무 어두워서 확실한 그래서 더욱 주춤거리게 되는 인생에서 한순간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쉽게 눈에 띄는 삶이, 쉼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경계가 있었으면 싶다.
작가의 문장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끄아악! 은하수 아래서 먹는 찜닭은 도대체 어떤 맛이며 어떤 감정의 바다에 빠지는 것인지 너무 알고 싶다. 또 작가가 아빠에게 마지막 받았다는 용돈 이야기에, 약간 모자란 액수를 행운의 숫자라고 표현해주는 고마운 마음에 울컥해 눈물이 씹혔다.
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의 아빠이므로 그리고 그 아이가 곧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기에 더 그랬다.
"문득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야 바깥에 있는 희미한 사람들이 그에게는 늘 선명하다. 어쩌면 그쪽 온기로 가득할 것도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또 졸음이 쏟아졌다. 그냥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p228
제주도에서 3년의 시간을 살았던 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늘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멘트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생활은 제주도에서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여유에 어쩔 줄 몰라 주말마다 늘어지려는 아내를 붙잡고 "우리 이러면 안 돼! 빨리 나가자!"라며 좀 더 새로운 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다 만나는 하늘과 라퓨타 구름은 심장을 덜컥 떨어트릴 정도로 행복함을 주었다.
그때 조금 더 늘어지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보라보라의 바다가 조금은 덜 부러웠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