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82년 생 김지영

나를 둘러싼 여인네들의 이야기, 가슴 아리다.

by 암시랑

오래전, 그러니까 벌써 2년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내가 묻는다.


"82년 생, 저 영화 요즘 뜨겁던데 읽었어?"

"응.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얼버부렸지만 읽는 내내 답답하고 죄스럽고 아팠던 책이었다. 내용을 리뷰해 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뭉텅뭉텅 휘발되어 버렸지만 그 느낌은 그대로다. 그땐 어찌 읽었을까 하여 뒤적거려 썼던 글을 옮겨 본다.


내 기억 속 82년 생 김지영은 이런 사람이었다.


아, 요 근래 독서를 부단히 해왔지만 이렇게 불편한 책이 있었나 싶다. <82년 생 김지영>은 44년생 이화자 씨가 선명해지고 74년생 이음미 씨에게 미안해지고 02년생 정명교 씨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는 이야기다. 쉽고 간결한 문장이지만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이 책은 천천히 곱씹게 한다. 반성하라고 깨달으라고 함부로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참 불편한 책이다. 답답하고 먹먹해서.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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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집도 내가 하지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시네. 못해도 7대 3 이거든? 내가 7, 당신이 3."


이 문장을 읽노라니 이화자 여사님이 선명해진다. 어쩜 이리도 닮아 있을까. 왜 이화자 여사님은 당당하게 알려주지 못할까. "내가 9, 당신이 1."이라고 확실하게. 답답하기만 하다.


44년 생 이화자 씨는 "쓰잘데기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볼 요량도 없이 무조건 그렇게 몰아붙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자매들까지도. 여자라는 이유로. 쓰잘데기 없어졌고 그녀의 남자 형제들은 쓰잘데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대학교까지 보내졌다. 그 시대는 그게 당연했다고 그녀는 소회 한다. 그런데 5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세상이지 않을까.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p165


이화자 씨의 꿈이 뭔지 물어봐 준 사람이 있었을까? 그녀의 꿈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져 다시 답답하고 먹먹하다. 책을 읽으며 김지영 씨는 82년생뿐 아니라 44년생이기도 70년생이기도 하며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부디 02년생인 딸을 봐서라도 김지영 씨가 82년생 김지영 씨가 아니길 바란다. 더 이상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길 바란다. 또 남자는 더군다나 아니길 바란다. 그냥 김지영 씨는 올곧이 김지영 씨이길 바란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싫어질 때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한다. 꼭 그랬으면 한다.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딸의 이야기. 불편하지만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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