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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Mar 31. 2016

화이트 그래미의 진실.

그래미는 정말 하얀색일까?

올해만큼은 다들 설마 설마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다. 거의 모든 매체에서 마스터피스라는 평을 받으며 지난해 힙합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Kendrick Lamar(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를 제치고, Taylor Swift(테일러 스위프트)의 팝 전향을 알린 [1989]가 2016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것이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라며 ‘#WhiteGrammys’ 해시태그가 유행했고, 국내 매체들도 그래미의 백인주의 논란에 대한 보도가 연달아 나왔다. <켄드릭 라마, ‘화이트 그래미’의 벽을 넘지 못하다> 등의 헤드라인을 달면서 그래미를 인종문제의 프레임으로 끌고 갔다. 평소 인종갈등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이 이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의 주장대로 그래미는 백인들을 우대하는 인종차별적인 시상식일까?

<2016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타가는 바람에 억울하게 욕을 먹은 테일러 스위프트.>

#WhiteGrammys는 근래에 들어 그래미 시즌 때마다 트렌딩한 해시태그다. 화이트 그래미를 주장하는 사람들 말로는 ‘Big Four’로 불리는 주요상(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상)은 백인 아티스트들이 휩쓸어가고 유색인종들에게는 장르상을 주면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논란이 된 올해 그래미만 보더라도 주요상 중 하나를 유색인종 아티스트가 차지했다. 올해의 레코드로 선정된 [Uptown Funk]를 부른 아티스트 Bruno Mars(브루노 마스)의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다. 그도 엄연한 유색인종이다.

물론 브루노 마스 하나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데이터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기에 앞서 우선 이 논쟁은 최근 20년까지 만의 데이터만 살펴보겠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우리는 근래 그래미의 백인주의 논란을 논하려는 것이지 마틴 루터 킹이 흑인 인권운동하던 시절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미에서 백인들에게 상이 집중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백인 인구의 비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 시행된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83.1%가 백인이었다. 2010년 인구조사에서는 동일 항목이 72.4%로 기록되었다. 지난 20년간 유색인종이 그래미 주요상(Big Four)을 수상한 경우를 살펴보면 올해의 앨범은 5회(25%), 올해의 노래는 6회(30%), 올해의 레코드는 4회(20%), 신인상은 5회(25%)다. 종합하면 총 80회 중 20회, 전체 중 25%가 유색인종 아티스트가 수상했다. 표본크기가 작긴 하지만,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유색인종의 비율이 16.9%~27.6%였던 것을 보아, 인종별 인구구성 비율과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주요상 수상자 중 백인 아티스트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은 인구학적으로 봤을 때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화이트 그래미는 단순히 인종별 비율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켄드릭 라마를 제치고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바로 [To Pimp A Butterfly]가 [1989]보다 작품성이나 파급력이 월등히 뛰어났(다고 본인들이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뽑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켄드릭이 ‘흑인’이었기에 마스터피스를 내고도 백인에게 밀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그래미 수상자가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전혀 모른 체 하는 말이다. (여담이지만 필자 역시 [To Pimp A Butterfly]를 Kanye West(카녜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이후로 들은 최고의 힙합 앨범이자 2015년 발매된 최고의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바로 그래미가 소수의 심사단(일명 그래미 할배)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그래미는 완전히 민주적인 과정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투표권은 모든 Recording Academy(이하 RA) 회원에게 주어지는데, RA 회원이 되려면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발매된 오프라인 음반에 6곡, 혹은 디지털 음원 12곡에 대한 참여 크레딧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여 크레딧은 굉장히 광범위한 대상에게 적용된다. 작곡, 작사뿐만 아니라 코러스, 연주 등 세션 뮤지션도 이에 해당되고,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 등 기술부문의 크레딧도 인정된다. 심지어 앨범 노트를 작성한 것도 크레딧에 포함된다. 한 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충분히 가입할 수 있는, 상당히 개방적인 조직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된다.

<그래미 투표과정을 총괄하는 Recording Academy.>

그래미 후보 접수기간이 되면 매년 약 2만 건 가량의 음악이 RA로 제출된다. 이때 RA 직원들은 각각 후보가 적절한 카테고리에 있는지, 해당 연도에 발매된 음반이 맞는지 확인 과정에 들어간다. 이후 1차 투표가 시작되는데, RA 회원이라면 누구나 Big Four 항목에 대해 각 1표와 20개의 장르상에 대한 투표권을 갖게 되어 총 24표가 주어진다. (RA는 회원들에게 자신이 잘 아는 장르에 한해서만 투표하라는 권고를 하지만, 철저하게 양심 제도로 이루어져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는 알 수 없다.) 1차 투표가 종료되면 각 부문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 중 부적절한(카테고리에 맞지 않는) 후보를 다시 한 번 걸러낸 뒤 최종 후보가 선정된다. 이들 중 1차 투표와 동일한 방식으로 각 투표자에게 24표를 주고 2차 투표가 진행된 후 다득표 원칙으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앞서 살펴봤다시피 크레딧만 있으면 누구나 투표권을 얻을 수 있는데다가, 한 사람당 24표씩이나 주어지다 보니, 전문성이 결여될 수밖에 밖에 없다. 24개의 부문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음악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들을 사람은 음악을 업으로 삼는 이들 중에도 얼마 안 될 것이다. 양심 제도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내가 락/메탈을 듣지 않더라도 Metallica(메탈리카)와 Lou Reed(루 리드)라는 이름만 보고 [Lulu]에 ‘올해의 메탈 앨범’ 표를 던지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이처럼 무의미하게 던져지는 표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특히 누구나 투표권이 주어지는 주요 상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해당 아티스트의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름값으로, 혹은 반복된 미디어 노출, 혹은 그냥 심심해서 그렇게 뽑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켄드릭 라마가 결국 수상하지 못한 것은 그가 흑인이어서 이기 때문이 아니라,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심사단의 선호도가 더 높았기 때문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설마 아직도 그 많은 투표단이 단체로 백인을 뽑자고 의기투합했다는 의심을 하진 않으리라 본다. 지난 20년 동안 투표로 뽑힌 유색인종 주요상 수상자가 무려 20회나 있었지 않는가?) 이때 선호도란 음악 취향이 될 수도 있고,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단순히 인지도가 될 수도 있다.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힙’ 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낮은 인지도의 뮤지션을 뽑는 심리도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미 주최 측은 작품성이 가장 중요한 잣대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반쪽짜리 인기투표에 불과하다.

결론에 도달해보니 화이트 그래미의 진상을 파 해쳐 보는 글에서 그래미가 얼마나 신뢰성이 없는 시상식인지 보여주는 글로 변한 것 같다. 그래미의 진짜 문제는 인종차별 논란이 아닌, 수상자의 음악성에 대한 논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종 불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너무 자주 나온다. 리스너의 입장에서 그래미는 그냥 가수들의 퍼포먼스나 즐기면서 수상 결과는 재미 삼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올해의 앨범상을 못 받아도 [To Pimp A Butterfly]가 마스터피스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은가.

<켄드릭 라마의 파격적인 2016년 그래미 퍼포먼스를 보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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