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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Mar 31. 2016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있다. 예정 시각보다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씻으려는 데 지금껏 멀쩡하던 화장실 압착 선반이 떨어지고 나오다가 문틀에 발가락을 찧고 헤어 드라이기 전원 코드 선에 걸려 정리해둔 물건들은 넘어지고 신으려고 했던 양말도 안 보이고 허둥지둥 나가니 버스는 지나가고,,, 글을 쓰면서도 화가 난다. 

이런 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괜찮아, 오후에는 좋아질 거야’ ‘참자 참아,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뿐이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와 업무 떠넘기기, 맹한 막내의 질문세례까지…… 어지간한 천하장사가 아니고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씻기도 짜증 나서 침대에 누워 SNS를 열면 친구들이 공유한 이 시대의 유명인사들의 명언이 쏟아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느니, 긍정의 힘이라느니, 지금 당신의 상태에서는 전혀 공감이 가질 않는 내용들이다. 지금의 고난을 잊고 내일을 웃으면서 기다리자는 얼토당토않은 긍정 강요에 화만 치밀어 오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일진이 사나운 날에는,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날에는 자신의 상황을 긍정하는 일은 그만하도록 하자. 대신에 우울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 다시 시간을 돌려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을 때, 짜증 나는 SNS는 켜지 말고 음악 실행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자.              

오늘 우리의 기분을 다운시켜 줄 노래. TRAVIS의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되시겠다. 

스코틀랜드 Glasgow(글래스고) 출신의 4인조 밴드 TRAVIS의 이 노래는 2집 [The man who]의 7번 트랙인 타이틀 곡으로 가사, 멜로디, 보컬 그 어느 부분도 밝지 않다.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왜 항상 나한테는 비만 오는 거야.
Is it because I lied when I was seventeen.

내가 17살에 한 거짓말 때문인 건가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왜 항상 나한테는 비만 오는 거야.
Even when the sun is shining, I can’t avoid the lightning.

해가 떠있어도 나는 번개를 피할 수가 없어.
Oh, where did the blue skies go?

푸르던 하늘은 어디로 간 거야?

And why is it raining so? It’s so cold.

왜 비만 오는 거야, 너무 추워.    


자신의 인생에 푸르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먹구름 낀 비구름만이 하늘을 뒤덮고 있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칠 생각을 하질 않는다는 내용의 가사는 당신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더 우울해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노래의 도입부에 먼저 흘러나오는 현악기 소리도 그 음색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맑고 쾌활하던 드럼도 명랑한 기타도 무엇 하나 신나는 게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가사를 읊조리는 보컬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더 힘이 없게 느껴진다. 

이 곡을 쓰게 된 사연은 더 우울하다. 보컬 Francis Healy(프란시스 힐리)가 쓴 이 곡은 연중 매일 비가 쏟아지는 고향 글래스고를 떠나 어딘가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한참 겨울이었던 이스라엘의 Eilat(에이라트)로 휴가를 떠났는데, 한겨울에도 20도를 웃도는 기온을 가진 에이라트마저도 그를 저버린 채, 그가 묵은 이틀간 비가 왔다고 한다. 또한 이 곡을 처음 선보인 건 1999년 Glastonbury(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었는데 이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페스티벌 내내 쨍쨍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비를 부르고 우울을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우울의 바닥을 거닐다 보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들은 사라지고 그냥 멍한 상태가 된다. 이때가 바로 기회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면 그곳에 집중을 시작하고, 급하지 않다면 얼른 눈을 감고 잠에 들자.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에 들고일어나서도 개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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