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빨강 테이프”

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by 아문선

식색성야|食色性也|:식욕과 성욕은 본성이다⌋

– 맹자-


중동 건설 노동자 식욕과 성욕

식욕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양배추로 만든 김치가 좀 거시기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성욕이 문제이다. 술도 여자도 없는 남자만의 세계에서 해소 방법은 X급 잡지를 보거나 X급 영화를 보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이슬람 율법이 금하고 있어, 이거마저도 참아야 하거나 아니면 모험을 해야 한다.


X급 잡지의 공급 루트는 미국인과 유럽인이 거주하는 ARAMCO CAMP이나, 때론 출국 시 홍콩이나 방콕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출판되는 플레이보이지가 보편적이지만, 영국의 팬트하우사가 더욱 노골적이라 인기였다. 그다음에는 더욱 노골적인 허슬러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혈기 왕성한 남정네가 참을 수 없으면, 노랑머리가 주인공인 X급 잡지를 안고 화장실로 뛰어가면 된다.


1970년 대 후반부터 X산업은 필름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전환된다. X급 잡지를 보거나 많은 사람과 영화관에서 민망한 영화를 보는 시대에서 My Video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중동 건설 노동자들에게 성인물을 시청할 수 있는 COLOR TV, VCR 그리고 빨강 테이프를 구한다는 것은 그림에 떡이다.


사막에는 사막의 법칙

사막에도 그들만의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는 관습이 있다. 생후 1년 이내에 남자는 할례|포경수술|를 하고, 여자는 음핵을 제거한다. 현대의 아랍 이슬람에서 남자 할례는 의무화이지만, 여자의 음핵 제거는 시행하지 않는다. 여성의 음핵 제거는, 낙타 대상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남편에 대한 성적 그리움을 최소화하게 함이란다. 또 다른 해석은 성감이 민감한 부분이 제거되어 성욕은 둔화되나, 성행위 시는 오히려 더 큰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썰도 있다.


결혼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하는 노총각들이 사회 문제가 되었나 보다. 동성애를 하거나 또는 성범죄를 일으키기도 했다. 소문에는 결혼 못한 노총각은 이쁜 양을 골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고 한다. 성의 음핵 제거는, 지참금이 없는 노총각이 옆구리를 아무리 찔러도 꿈쩍도 안 하는 석녀를 만들고자 하는 "알라의 신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지참금|Mahaf|라고 불리는 개념은 이슬람 결혼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한다. 이는 이슬람 결혼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직접 제공하는 금전 또는 재산이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결혼 계약의 일부로서 반드시 명시되고 지불되어야 하는 항목이고, 지참금의 수혜자는 오직 신부 본인이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부모나 가족이 넘보면 안 되는 아랍 여인의 비상금으로,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한다. 결혼 후 혹시라도 이혼이나 불화가 생길 경우, 신부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또 하나는 남편이 무책임하게 이혼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장치라 한다.


거사의 3대 요소

오늘따라 총 반장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부른다.

"어이 공고생! 숙소에 Color TV 있지? 이번 주말 영화나 볼까?"

우선 방장인 이 씨 형님께 숙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지 승낙을 받는다. 그리고 라히마 캠프 실세 새마을 위원장님께 휴게실에 설치된 VCR을 빌릴 수 있는지 여쭈어 본다. 그림에 떡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떡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일사천리|一瀉千里|로 거사 날짜와 장소가 확정된다.


거사에 필요한 3대 요소는 컬러 TV, VCR|Video Cassette Recorder|, 그리고 빨강 테이프이다. 캠프 내 왕끗발 새마을위원장이 휴게소 VCR을 뽑아 오고, 영국인 슈퍼바이저와 말이 통하는 총반장이 빨강 테이프를 빌려오고, 라히마 캠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Color TV를 보유하고 있는, 공고생 숙소가 거사의 장소이다. 거사날은 모두가 편안한 금요일 저녁 7시이다.


긴긴밤이 외로운 20여 명 남짓의 남정네들이 모여든다. 거사에 공이 큰 총 반장, 새마을 위원장, 초청된 몇 명의 귀빈 그리고 방주인 8명이 우선 상석에 자리를 잡는다. 빨강테이프가 들어왔다는 소문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추가 관객들은 12인치 TV가 보일 것 같지 않는 입구 쪽에 자리를 잡는다. 침상에 걸터앉고, 바닥에 쪼그리 자세로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얼굴에는, 이런 류의 비디오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슬쩍슬쩍 TV를 바라보곤 했다.


양쪽으로 4개의 나무 침상이 있고, 숙소 입구에서 끝쪽 중앙 벽면에 설치된 TV에 전기공 이 씨 형님이 노련한 솜씨로 VCR 단자에 케이블을 꼽는다. 어렵게 구했다고 은근히 인맥을 자랑하는 총반장이 빨강 테이프를 직접 꼽아 넣는다. 용접공 최 씨는 침을 꼴딱 삼킨다. 찌이 지이~, 정기 방송이 끝난 TV 화면처럼, 우주인이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처럼 도통 알아볼 수 없는 주사선이 난무한다.


어렴풋이 무슨 일을 하는지만 보인다. 총반장이 테이프를 뽑아 다시 꼽아보고, 전기공 이 씨 형님이 케이블 단자를 확인에 확인을 하며 다시 꼽는다. VCR 앞면, 윗면 아랫면 모두 두드려 보고, 케이블을 이리저리 꼽아 보지만 백약이 무효다. 뒤엉켜 싸우는 노랑머리 남녀의 잔상과 가끔 엉덩이를 타~악 타~악 두드리는 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만 들릴뿐이다.


암수 짝이 맞아야

디지털 시대인 지금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렵게 구한 동영상 파일을 재상 하는 플레이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설치가 안되었거나, 또는 동영상 플레이어가 필요한 코덱을 지원을 못하거나, 포맷을 인식을 못하는 경우이다. 그래도 별문제가 없다. 쉽게 무료 동영상 플레이어 프로그램을 찾아 설치하거나, 코덱을 추가하면 된다.


"거사의 실패"는 비디오 시스템의 호환성을 이해 못 하는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Color TV 방송이 시작되고, 영상신호를 처리하고 전송하는 방식은 미국 중심의 NTSC 방식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PAL 방식이 대표 주자였다. 한국은 당연히 미국 표준을 따른다. 숙소의 TV 그리고 캠프 휴게실의 VCR은 NTSC방식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총반장이 어렵게 구한 빨강테이프는 PAL 방식으로 녹화된 비디오테이프였다.


어렴풋이 먼가 호환성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총반장은 테이프를 꺼내려한다. 입맛 다시던 새마을 위원장님 급하게 한 말씀하신다.

"그냥 나두셔유~ 끝까지 함 봐유. 기계가 열받으면 제대로 나올지도 모르잖유~"

30분 정도의 재생하는 빨강 테이프는 그래도 사운드는 살아 있었다. 흐~엉 흑 흑...


사막에 밤은 깊어간다

아! 아쉽도다. 빨강 테이프 들어온다는 소문에 며칠을 설레었는데, 신음 소리라니. 잠 못 드는 밤 숙소는 뒤척이는 남정네의 신음소리 울려온다. 1번 침상 용접공 최 씨 묵직한 체격만큼이나 나무 침상 삐걱거리는 소리도 묵직하다. 삐걱~ 삐걱~ 그리고 조용하다. 2번 침상과 3번 침상은 동시에 흔들린다. 어어억. 8번 침상을 끝으로 사막에 밤은, 밤꽃향 스멀스멀 풍기며 깊어만 간다. Good Night ~




참고 문헌 및 인용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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